특집

[우리교구 이곳저곳] (28) 성라자로마을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2-05 수정일 2017-12-05 발행일 2017-12-10 제 307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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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최초의 한센병 환자 치료·자활 시설
민가와 떨어진 외딴 곳에 자리잡고
국내외 후원자 도움으로 활동 펼쳐
최근에는 해외의 한센인들 돕기도

성라자로마을 입구.

한센인들과 나누고, 한센인들을 섬기며, 한센인들과 함께 살아간 교회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성라자로마을(원장 한영기 신부)이다.

안양대리구 관할인 의왕 모락산 자락. 성라자로마을로 가는 길은 마치 가톨릭타운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오전동성당과 가톨릭교육문화회관을 지나면 안양대리구청이 자리하고 있고, 성라자로마을에 들어서기 직전에 마리아폴리센터도 있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교회의 마을에 푹 들어온 느낌이다.

지금은 근처에 많은 아파트단지가 있지만, 1951년 ‘성라자로요양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이 세워질 당시 이곳은 민가와 떨어진 외딴 곳이었다. 인근에 산이 있어 땔감을 구하기 쉬웠고, 골짜기에 흐르는 물과 지하수가 있어 식수를 구하기도 좋았다.

이 시설은 한국교회 최초의 구라사업 기관이었다.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자활할 수 있도록 1950년 광명에서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 의왕에 자리 잡았다.

입구의 ‘성라자로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성라자로마을의 ‘라자로’는 복음서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연명했지만, 마침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성라자로마을로 올라가는 길. 길을 따라 늘어선 팻말에 주님의 기도가 적혀있다.

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가 마을의 ‘아론의 집’에서 자주 열리기에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정작 이 마을을 거닐어 본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을은 20여 채의 다양한 건물로 구성돼 있다. 각 건물에는 누가 이 건물을 기증했는지도 기록돼 있다. 국내에서부터 해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이 이 마을에 모여왔음을 알 수 있는 표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한센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정부와 가톨릭구제회에서 주는 밀가루로 겨우 식생활을 이어가는 정도고, 한센병에 걸렸지만 의사도 없이 자체적으로 기초적인 치료를 해나가야 했다.

하지만 성라자로마을의 활동으로 후원자들이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했고, 1970년부터는 라자로돕기회의 활동으로 후원과 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라자로돕기회 회원은 한때 3만여 명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2500여 명의 회원만이 남았다.

이경재 신부 흉상. 이경재 신부는 제1대, 제7대 원장을 역임하며 한센인들의 의식주와 치료를 위해 노력했다.

성라자로마을에 세워진 예수상과 아론의 집 전경.

마을 성당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흉상과 마주했다. 마을을 처음으로 설립한 조지 캐롤 안 주교와 제1대, 7대 원장을 역임한 이경재 신부의 모습이었다.

특히 이 신부는 1970년 원장으로 재취임한 이후 평생을 마을 원장으로 헌신했다. 그는 1951년 수원본당(현 북수동본당) 보좌로 부임하면서 한센인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원장으로 재임하면서부터 한센인들의 의식주와 치료를 돌볼 뿐 아니라 삶의 의욕을 잃은 한센인들이 정체성을 찾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제7대 원장으로 재부임하면서는 마을 내부만을 활성화한 것이 아니라 구라사업을 해외까지 확장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한센병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진 현재, 전국적으로 한센인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해외에는 여전히 한센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은 현재에도 후원회와 ‘그대있음에’ 공연 수익금으로 모은 후원금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한센인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다.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차가웠지만, 마을에는 어쩐지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아마도 이경재 신부의 취임사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요, 아름다운 일 중에서도 가장 멋진 것입니다. 나는 기권자가 아니라 도전자입니다. 나는 사제요, 목자입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