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심아기(바르바라)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1-0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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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으로 수도자처럼 살다 매 맞고 순교
‘어디에든 주님 계신다’는 믿음으로
교회법 지키며 끊임없이 기도와 묵상

복자 심아기(바르바라) 초상화.

심아기(바르바라) 복자는 하느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신앙선조다.

1783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복자는 오빠 심낙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러던 중 특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동정의 삶을 살았던 성녀들의 삶에 감동해 자신도 동정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복자는 깊은 신앙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갔지만, 그 모습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복자는 무소부재(無所不在), 즉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집 안에서 조용히 교회의 법규를 지켜나갔기 때문이다.

복자는 금식, 금육을 철저히 지키고 끊임없이 기도와 묵상을 하며 마치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오빠 심낙훈이 체포되자 복자는 머지않아 자신에게도 포졸들이 찾아오리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포졸들이 들이닥쳐 “이 집에 심아기라는 천주학쟁이가 사느냐”고 묻자 복자의 어머니가 포졸들을 막아섰다. 그때 복자는 동요하지 않고 어머니를 향해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제가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순종하도록 놓아두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곤 옷을 갈아입고 포졸들을 따라나섰다.

한양으로 끌려간 복자는 포도청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복자는 모진 매와 고문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만을 말했다. 20여 일에 걸친 문초 속에 결국 복자는 매를 맞다 순교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녀에 앞서 체포된 오빠 심낙훈은 모진 고문 속에 굴복해 사형을 면하고 무안으로 유배됐다. 복자의 순교 후 심낙훈은 “저는 제 누이 바르바라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죽게 했는데, 누이는 끝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어농성지

어농성지 전경.

어농성지(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로 62번길 148)는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복자 윤유일(바오로)를 비롯한 파평 윤씨의 선산을 성지로 조성한 곳이다.

성지는 신유박해 당시 성지 인근인 경기도 광주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복자도 함께 현양하고 있다.

※문의 031-636-4061 어농성지, http://onong.or.kr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