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약아빠진 인간들의 어리석음 /황광지

황광지(가타리나) 수필가
입력일 2017-10-24 수정일 2017-10-24 발행일 2017-10-29 제 306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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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제목에 끌려 이시백의 소설 「나는 꽃 도둑이다」를 읽었다. 민초들을 서술하는 작가의 말솜씨에 찬사를 보냈다. 약아빠진 인간들의 됨됨이가 슬프고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청계천 주변에서 가까이 지내온 이웃끼리 만든 친목계. 그 밑바닥 떨거지들의 이해타산과 지나친 잔머리가 덫이 되어 궁지에 떨어지는 어리석음.

이율배반적 속성을 띤 민중은 서로 약소자이면서도, 그 사이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하면 정당방위이고 남이 하면 폭행이 되는 것, 넘치고 넘치는 윤리의 부재와 혼돈을 소설에서 풍자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기념하는 전 시장의 명판이 사라진 사건으로, 친목계원들은 시시콜콜한 일상을 야비하게 진술하며 주위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끌어들인다. 느닷없이 안 목사를 죄인으로 진술하고, 졸지에 소환된 안 목사는 명판 도둑이 아닌 ‘꽃 도둑’임을 자백한다. 공공근로에 참여한 안 목사의 아내는 청계천 주변 화단에 심다 시들어 버려진 화초를 가져와, 살려내고 팔아서 끼니를 이었다. 너무 힘들 때는 시들지 않은 화초도 가져왔다. 국가는 태평성세를 외치지만, 영악하지 않은 민초들은 목구멍에 풀칠하기조차 불가능했다. 안 목사는 남은 화초라도 화단으로 되돌리려 하다가 결국 죽게 된다.

‘아무도 물가에 쓰러진 노인의 이야기나, 해 질 무렵이면 그 자리에 혼자 앉아 망연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미망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청계천에는 축제가 열리고 스피커 소리는 고막을 자극하지만, 적막하고 냉엄한 현실은 그대로일 뿐이다. 나는 인간들이 얄밉고 처량했다.

황광지(가타리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