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평택대리구 죽산본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11-01 수정일 2016-11-02 발행일 2016-11-06 제 301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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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순교지 ‘잊은 터’에 본당 신자 정성 모아 성지 조성
병인박해에 신자 떠났으나 공동체 다시 형성
죽산 장릉리 공소에서 1983년 본당 승격현재 본당 공동체, 죽산성지 관리에 참여

죽산성당 전경.

평택대리구 죽산본당(주임 박건우 신부)은 죽산 지역의 순교자들을 현양하며 지역에 복음을 전해온 본당이다. 조선시대부터 죽산 지역에는 신자들이 많이 거주해왔다.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죽산 도호부가 있던 이곳은 박해의 중심지가 됐다. 죽산 도호부가 관할하던 지역의 신자들은 모두 이곳에 잡혀와 심문을 받고 또 순교했다.

박해가 얼마나 참혹했던지 지역 사람들은 ‘그곳에 끌려가면 이미 죽은 사람이니 잊어라’라는 의미로 순교터를 ‘잊은 터’라고 불렀다. 그 극심한 박해에 죽산지역의 신자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고, 60여 년이 지나도록 신자라고는 단 한 사람도 살지 않는 곳이 됐다.

순교자의 피가 흩뿌려진 이 땅에 다시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때는 1934년이었다. 1932년부터 신자가족들이 하나 둘 죽산으로 이사해왔고, 이윽고 죽산 장릉리 공소가 설립됐다. 이 공소공동체는 공소회장의 집에서 공소예절과 판공을 치렀고, 열심한 전교활동으로 입교자들을 인도했다. 신자들이 점차 증가하자 1961년에는 공소 강당을 마련해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1987년 죽산본당 신축성전 봉헌식.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공소의 본당 승격은 죽산의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성당건립이 계기가 됐다. 1979년 안성본당은 죽산에서 순교한 24위의 순교자를 교회 문헌을 통해 고증하고, 본당설립 80주년 기념사업으로 ‘병인년 순교성지 죽산성당’을 건립하고자 했다. 당시 안성본당 주임이었던 이정운 몬시뇰은 안성본당의 역사자료를 발굴하면서, 「병인 순교성지 경기도 죽산 1866~1871」이라는 연구자료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1980년 7월 교구 참사회의 의결을 거쳐 같은 해 9월 기공식이 열렸지만, 사제소임이동과 자금난 등의 사정으로 성당 건립 과정은 중단됐다. 하지만 성당 신축공사가 중단된 직후인 1981년 6월 23일 죽산공소는 준본당으로 승격됐다. 본당은 공사를 재개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공소강당을 증·개축해 교육관으로 사용했다.

마침내 1983년 8월 1일 죽산본당이 설립됐다. 이어 본당은 1987년에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당인 만큼, 성당 내에는 죽산순교자 기념비와 24위의 순교자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2004년 죽산순교성지에서 거행된 수원교구 안성지구 순교자 현양대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본당은 죽산성지 조성에도 앞장섰다. 죽산의 순교자를 현양하기 위해 성당을 세우긴 했지만, 나아가 순교자들이 순교한 ‘잊은 터’를 성역화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덕분이었다. 가난한 시골본당이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한 ‘잊은 터’의 땅을 매입해 나갔다. 본당의 신자들이 마련한 이 땅은 1995년 교구 성지로 선포됐고, 오늘날 죽산성지를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

현재 1449명의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죽산본당은 복음화 활동과 더불어 성지의 크고 작은 행사에 봉사하는 등 죽산성지를 돌보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