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영성의 뿌리] 빈첸시오 아 바오로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6-01-27 수정일 2016-01-27 발행일 2016-01-31 제 298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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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 섬기기 위해 수도회 세워
모든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o)는 1581년 프랑스 랑드 지방 가난한 농장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1597년 이후 툴루즈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600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1605년 마르세유로 기부금을 받으러 갔다 오던 그는 이슬람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됐다. 먼저 한 어부에게 팔렸던 그는 뱃멀미 때문에 연금술을 연구하는 노인의원에게 다시 팔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노예 신분에서 해방돼 다시 사제로 사목하면서도, 빈첸시오는 당시 겪었던 고통을 잊지 않고 수입의 일부분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1617년 샤띠옹 레 동부에 주임신부로 부임한 빈첸시오는 본당의 여러 병폐들을 개선하는 한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애덕부인회’를 창설했다.

빈첸시오는 1625년에 남편이 죽은 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을 만나게 됐다. 지도 신부가 돼 달라는 루이즈의 청을 받아들인 그는 루이즈에게 애덕부인회를 방문하고 격려하는 일을 맡겼다.

빈첸시오와 루이즈는 가정을 가진 애덕회 부인들만으로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간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가난한 이들을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는 ‘사랑의 딸회’를 창설했다. 이 수도회는 ‘가난한 이들의 종’이라 불린다.

빈첸시오는 1660년 79세의 일기로 주님의 품으로 떠났고, 1737년 성인으로 선포됐다.

루이즈도 1660년 6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1934년 성인 반열에 올랐다. 1960년에는 모든 그리스도인 사회사업가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됐다.

1633년 11월 29일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과 루이즈 드 마리약 성녀가 설립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회원들은 청빈·정결·순명의 3대 서원 외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라는 서원을 추가했다. 이 회 수도자들은 종신서원을 하지 않는 대신 매년 주님탄생예고대축일인 3월 25일에 서원을 갱신한다.

한국의 사랑의 딸회는 1978년 당시 안양 라자로 마을 원장 이경제 신부의 초청에 응답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경기도 양주에서 노인전문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의정부·수원·안양지역의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를 위한 사목을 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위치한 본오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역민의 복지증진과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원들의 영성교육도 펼치고 있다.

김진영 기자 (nicola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