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6) 영들의 전쟁

유시찬 신부(예수회)
입력일 2015-06-23 수정일 2015-06-23 발행일 2015-06-28 제 2950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이제 영신수련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볼 것은 ‘두 개의 깃발 묵상’입니다. 본래 이것은 영신수련 둘째주간 들머리에 놓여 있습니다. 허나 우리는 이 기도 주제를 뒤로 빼서, 예수님의 공생애와 수난 및 부활에 대한 관상을 모두 마치고 그 전체를 종합 정리하는 차원에서 다뤄 보고자 합니다.

두 개의 깃발이란 그리스도의 깃발과 악마의 괴수인 루치펠의 깃발입니다. 성령인 그리스도의 진영과 악령인 루치펠 진영의 전쟁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당신 자신의 전 생애가 두 깃발의 싸움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전 삶도 역시 두 깃발의 싸움임을 알아듣고 그에 잘 대처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들 안에 성령과 악령의 영들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며 싸워 이겨 나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두 개의 깃발 싸움 즉 영들의 전쟁이다 보니 전쟁엔 그에 합당한 전략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루치펠의 전략을 보면 모든 이들의 영혼을 부추겨 부와 명예와 오만을 추구함으로써 결국엔 자기 영혼을 파멸의 길로 이끌도록 합니다. 먼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게 만들고, 이어서 정신적인 명예에 집착하게 만듦으로써 총체적으로 오만에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의 전략은 부 대신 가난을, 명예 대신 모욕과 업신여김을, 오만 대신 겸손을 추구하게끔 영혼들을 이끕니다.

두 개의 깃발 싸움이란 프리즘을 통해 이 사회 내지 세상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세상이 얼마나 사탄의 전략에 휘말려 들어 있는지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오직 경제 경제 하면서 모든 것을 돈 중심으로 물질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단적인 모습입니다. 거기다 끊임없는 경쟁의 판 위에서 자기만을 최고로 우뚝 세우고자 하는 명예를 향한 움직임이 더해집니다.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돌보며 함께 걸어가고자 하지 않고 자기만이 특수하고 우월하다는 지극한 오만에 떨어지며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무시하고 짓밟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깃발이 바로 에고 시스템입니다. 남과는 분리되어 있는, 오직 자기만을 중심으로 삼고 자기만을 목적으로 하며 다른 이들은 수단으로 삼아 해석하고 작동하는 시스템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그리스도의 깃발과 루치펠의 깃발이 전쟁을 벌인다 해서 루치펠을 완전히 박멸해 없애 버리고 그리스도만이 살아남는 승리를 이뤄내는 것이 목적인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성령인 그리스도와 악령인 루치펠이 공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령과 악령이 평형을 이루며 대치하고 있는 그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균형을 잡으며 자유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자유 내지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해서 비로소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참된 사랑과 진리와 생명을 향해 걸어갈 수 있고 참된 세상을 일궈낼 수 있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음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지옥 또한 하느님 안에서 지옥인 것이지 하느님과 분리된 별도의 세상으로서 지옥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진영과 루치펠의 진영의 간단없는 싸움이 있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지옥이 통제되는 가운데 천국의 선과 진리가 뿜어내는 기쁨과 평화와 행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음과 양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가운데 태극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이 이뤄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눈앞에 두며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장면들은 단순한 이성과 감성 차원이 아닌 영들의 전쟁임을. 우리 안에 성령과 악령이 함께 있으며 끊임없이 우리의 자유 의지에 좇은 선을 선택해야 함을. 우리 안에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으며 에고의 지옥 대신 함께 하나된 천국에로 눈을 돌려야 함을.

유시찬 신부는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