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4. 교회가 걸어가야 할 가난의 길

김근영 기자
입력일 2015-05-20 수정일 2015-05-20 발행일 2015-05-24 제 294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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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가 가난한 이들의 아픔 함께해야
빈민·철거민 보듬는 빈민사목위 출소자 돕는 ‘기쁨과 희망은행’ ‘노역 대신 희망’ 장발장은행 등 소외계층 돕는 데 앞장서온 교회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지더라도’ 가난한 이들이 희망 찾도록 돕는 교회의 사목적 배려·결단 필요
교회는 세상과 다른 시선으로 가난한 이들을 찾고 그들을 품어왔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2014년 12월 25일 서울 중구 순화동 1-1 재개발구역에서 봉헌한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성탄 현장미사’.
그리스도인에게 ‘가난’이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다. 인간은 한평생 돈·명예·권력 등을 움켜쥐며 만족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과 관계 맺는 인간은 정반대의 체험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참하고 어두운 현실, 곧 ‘가난’을 체험한다. 이 때문에 교부들은 모두 가난의 길을 걸었으며, 엄한 어조로 재물을 멀리하라고 경계했다. 사순시기 신자들을 광야에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킬 때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가난한 이들이 설 자리가 없는 교회는 세속과 별 차이없이 가진 자들만의 배타적인 집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지니게 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자는 슬로건은 복음의 참된 생명력을 선포하며 재물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도록 경계하자는 외침이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로 드러나는 소외계층이 교회 안에서 당당히 대접받고 신앙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희망을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최대 화두인 ‘현대화’(aggiornamento)에 한국교회가 응답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상시적 관심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임용환 신부) 설립은 1970년대 무분별한 도시재개발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와우아파트 붕괴참사와 광주 대단지 사건 등 가난한 이들의 삶의 자리가 강제로 철거되면서 도시빈민들의 인권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무허가 건물과 판자촌이 늘어나자 교회는 도시빈민들의 신음에 즉각 반응했고, 1987년 4월 서울대교구장 자문기구로 ‘도시빈민사목위원회’(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이하 빈민위)를 설립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을 비롯해 ‘빈민운동의 대부’,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불린 고(故) 제정구(바오로·1944~1999) 국회의원과 ‘빈민의 아버지’ 고(故) 정일우 신부(예수회ㆍ1935~2014)의 역할이 컸다. 빈민위는 철거지역 현장활동을 강화하고, 철거민들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연대를 촉구하며 정부와 사회의 변화를 위해 앞장서오고 있다.

아울러 지난 1996년부터 9년간 현장사도직 프로그램 ‘바울로계획’을 전개하며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실천하기도 했다. 수도자들과 평신도로 이뤄진 선교사들은 교회 사목영역의 마지막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삼양동·봉천동·무악동 재개발지역과 우면동 비닐하우스촌 등지로 뛰어들었다. ‘바울로계획’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등 5개 수도회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내 서울 빈민지역 다섯 곳에 분원을 여는 단초를 마련했다.

(사)제정구기념사업회 박재천(세례자 요한) 상임이사는 “지난 1980~1990년대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교회의 목소리가 컸지만, 최근에는 가난에 대한 문제를 행사 차원으로만 고려하는 듯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가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제기되고 있지만, 교회차원에서 어떻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상시적 관심을 유지할지가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또 “아무리 부자동네라 하더라도 잘 찾아보면 가난한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며 “교회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난의 현상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상과 다른 시선으로

교회는 세상과 다른 시선으로 가난한 이들을 찾고 그들을 품어왔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김성은 신부)는 지난 2008년 6월 무담보대출은행 ‘기쁨과희망은행’(본부장 황봉섭)을 창립해 출소자들과 피해자 가족의 자립을 도모해오고 있다.

대출을 위한 필수과정인 창업교육은 1주일 기초교육으로 시작되며, 이 기간 동안 신청자들은 인성교육과 창업교육을 통해 창업에 대한 의지와 노하우, 운영방안과 사업계획서 작성법 등을 배운다. 기초교육 참가자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통과되면, 면접 등을 통해 2차 심화교육 여부가 결정된다. 심화교육을 마친 이들에게는 약정식과 대출, 창업이 진행된다.

놀랍게도 교회 안에서조차 이 사업을 두고 ‘죄인들을 왜 지원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대출을 받은 이들은 물질적 지원보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줬다’는 점에 크게 감동한다. 김성은 신부는 “‘기쁨과희망은행’은 단순히 돈을 대출해주는 곳이 아니라 신뢰와 인간다운 대접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주는 곳”이라며 “창업에 성공할 만한 사람을 지원하기보다는 절박한 사람을 지원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총 400여 명의 교육생이 기쁨과희망은행 창업교육 기초·심화과정을 거쳤다. 이 가운데 183명이 대출을 받았으며, 3명의 완납자가 나왔다. 김 신부는 “‘기쁨과희망은행’은 지금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동반자적 역할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5일 출범한 ‘장발장은행’도 교회 안팎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이 따뜻한 시선을 내어준 결과다. ‘장발장은행’은 가난 때문에 벌금을 감당하지 못해 노역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소년소녀가장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벌금을 대출해준다.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를 고문으로 한 장발장은행은 출범 당시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그 자체로 형벌”이라며 “사회적 모성을 품은 따뜻한 은행으로서, 돈이 자유를 빼앗아가는 세상을 한 뼘이라도 밀어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교회는 장발장은행의 기획 단계부터 격려해왔으며, 지난 3월 23일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흔쾌히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150명이 넘는 이들이 대출을 받아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

교회는 가난의 현장에 뛰어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하며 희망을 선포해왔다. 그럼에도 ‘가난’이라는 말마디에 교회가 주저하는 큰 이유는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매일의 고통과 불안을 교회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교회는 다시 가난한 이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로 총칭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상실감과 억울함을 교회가 끌어안기 위해서는 성직자·수도자·평신도 존재 전체가 ‘복음의 기쁨’이 돼야 한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힘차게 다가가려면 본당사목·특수사목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 등 다양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사목적 배려와 결단 역시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하더라도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복음의 기쁨」, 49항)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김근영 기자 (gabin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