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3. 가난에서 멀어진 교회

김근영 기자
입력일 2015-04-15 수정일 2015-04-15 발행일 2015-04-19 제 294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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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 선택’ 대신 마지막 자리로 밀려난 가난한 이들
“신앙, 돈·시간 넉넉해야 누리는 듯”
“없는 신자들 말 귀담아 듣지 않아”
교회 중산층화 현상 심해질수록
가난한 사람들 설 자리 사라져
교회가 가난에서 멀어질수록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 정신은 약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20살 때부터 본당 중고등부 교사로 활동하며 궂은 일을 도맡았던 박정원(가명·베드로·29)씨는 대학 졸업 후 연달아 공무원시험에 낙방하면서 본당에 얼굴을 내밀기가 어려워졌다. 최근 용기를 내어 본당 청년 미사에 참례한 박씨는 후배 교사로부터 “나이도 차는데 얼른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상처를 입었다.

“본당에서 취업준비에 한창인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배려해주지는 않는 듯해요. 그보다는 경제적으로 탄탄한 직장을 얻어 출세해야만 한 가족으로 삼아주겠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들과 담을 쌓게 되면서 신앙생활도 점점 어려워졌어요.”

서울 마포구에 작업실을 둔 서형우(가명·요한·42)씨는 가난이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시각 예술가로, 자기 직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었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덕에 2년 전 늦깎이 신자가 됐지만, 서씨는 본당 공동체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소리 없는 핀잔을 감내해야 했다.

“신앙이란 어느 정도 돈과 시간이 넉넉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사목자들은 정책적인 부분에서 재력이 있는 신자들의 말은 듣지만, 직업이 없거나 가난한 신자들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젊고 고급 교육을 받은 이들이 교회로 밀려들어오면서 교회 내 중산층 출신 신자들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만큼 잘 살게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교회의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가난한 이들을 향해 교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교회와 세상이 뭐가 다른지” 통탄하고 있다. 그동안, 부자의 문 밖에서는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라자로의 수가 늘고 있다.

‘청년이 곧 교회의 미래’라는 슬로건은 실제로 본당 울타리 밖에 있는 청년 신자들을 감싸안기에 역부족이다. 이른바 ‘출세’하지 못한 신자들의 목소리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묻혀버리기 일쑤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어느 교구 살림살이를 보더라도 가난한 이를 위한 인력이나 재정을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지표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사목활동이나 재정운용에서 가난한 이는 우선순위에서 마지막 자리로 밀려난다. 건축을 비롯해 본당 단체나 봉사자를 위한 프로그램 등에 막대한 예산과 열정을 투입한 다음에 여력이 남으면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을 실천한다”고 지적했다.

부자들에게 눈길이 쏠려 있는 교회에 거리감을 느끼는 가난한 이들은 분명 교회 울타리 안에 있지만, 누구도 부르는 이 없어 멀리서 서성대고 있는 모습이다.

김근영 기자 (gabin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