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14)
하느님께는 과거나 미래가 없다
형언할 길 없는 그 불변하는 본성은 ‘있었다’나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있다’만을 쓸 수 있기에(변할 수 없으므로 참으로 존재하기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옳습니다. “나는 있는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그렇지만 우리의 유한성과 가변성에 연루된 시간의 가변성 때문에, 우리가 ‘있었다’나 ‘있을 것이다’, ‘있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은 아닙니다. ‘있었다’는 과거의 시간, ‘있다’는 현재의 시간, ‘있을 것이다’는 미래의 때입니다. 그분께서는 계시지 않은 적이 결코 없으므로 ‘있었고’, 계시지 않은 적이 결코 없을 것이므로 ‘있을 것’이며, 항상 계시므로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99,5,2).
하느님만이 불변하신다
참된 한 분 하느님이신 거룩한 삼위일체는 영원하신 만큼 그 본성이 불변하는 유일한 분이심을 굳게 믿고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당신 종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루스페의 풀겐티우스, 「신앙에 관해 페트루스에게」 9,50).
하느님만 존재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나는 있다’라는 표현은 신에게 속합니다. 이것은 시간과 더불어 변하지 않고 항상 거기에 있고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왜 하느님만이 당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이러한 용어를 쓰실 수 있는 것인지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말이 선언되었을 때는, 천사들과 하늘의 피조물들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만이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시간 안에서 시작되지 않은 영원한 본성이시며 세 위격 안에서 하나의 신성이시기에, 하느님만이 ‘존재하신다’는 말을 들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존재하는 데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으시며 당신 자신의 힘으로 영속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다른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의 음절인 ‘숨’sum(나는 있다)은 세 개의 철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거룩한 삼위일체는 한 분 하느님이심을 배웁니다(카시오도루스, 「시편 해설」 49,7).
영원성을 나타내는 하느님의 이름
여러분은 그분의 영원성에 대해서도 배우고 싶습니까?… ‘있는 나’라는 말은, 그분께서는 항상 존재하시고 시작이 없으시며, 실제로 존재하시고, 주님이요 주인으로서 존재하심을 의미합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요한 복음 강해」 15).
암브로시우스는, 타는 떨기 안에서 나타나신 모습은 성자의 현현이라고 설명한다.
성자의 현현
떨기 안에서 모세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분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십니다. 모세는 그분에 대해서 “‘있는 나’께서 나를 보내셨다”라고 말합니다. 떨기 안에서, 또는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분은 성부 하느님이 아니라 성자이십니다(암브로시우스, 「신앙론」 1,13,83).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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