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88·끝) 왜 사순시기를 40일이나 지낼까?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입력일 2013-03-20 수정일 2013-03-20 발행일 2013-03-24 제 2838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연민’ 원리가 사순시기를 길게 지내는 이유
예수님 고난은 이웃의 고난으로 연장돼야 
영성은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생활
교회는 왜 사순시기를 40일이나 지낼까. 예수님 고통 묵상하는 거야 3시간 이면 충분하지 않는가. 왜 40일 넘게 오랜 기간 이 문제에 대해 묵상하라고 하는 것일까.

가만히 성체 앞에 앉아서 예수님 고통을 체험하는 것은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삼위일체 예수님의 고난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내가 예수님 고난을 묵상으로 동참한다고 해서 예수님께 도움되는 것은 없다.

40일의 사순시기를 교회가 마련한 것은 이유가 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신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의 고난은 이웃의 고난과 상처로 연장돼야 한다. 이웃의 고통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 삶 속에서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내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연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느님 뜻과 조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과 합치하고 주어진 상황과 융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이웃에 대한 ‘연민’이 그것이다. 이 ‘연민’의 원리가 바로 우리가 사순시기를 40일 동안 길게 지내는 이유다. 순명하는 마음으로 ‘연민’을 발휘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 ‘연민’이 아니라 순명하는 마음으로의 ‘연민’이 중요하다.

성체조배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외로울까 걱정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체 조배실에 앉아 있어야, 세상에 나갈 힘을 주시기 때문에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다. 오대양 육대주로 나를 보내주시는 섭리를 깨닫기 위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다.

성체 조배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동시에 명령을 직접 하달받기 위해 가는 곳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가 성체 조배실에 있을 때, 미사에 참례할 때, 성경 공부할 때 각각 다양한 ‘지시’를 주신다. 신앙인들은 그 지시를 따라서 사는 이들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지시들은 모두 하느님과의 합치, 주어지는 상황과의 융화, 이웃에 대한 ‘연민’이라는 그릇에 담긴다. 이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하느님은 사탕이나 빵을 주시는데 그릇이 없다면 받지 못한다. 그릇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합치의 그릇, 융화의 그릇, ‘연민’의 그릇이 있어야 한다. 미사를 하고, 성체 조배를 하고, 수도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이런 그릇들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그릇으로 기쁘게 많이 받아야 하고,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눠야 한다. 받아야 기쁘다. 내 그릇에 많아야 기쁘다. 그래야 기쁘게 나눌 수 있다.

동시에 지금까지 만든 그릇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꾸 바꿔야 한다. 좀 더 큰 그릇으로 계속 교체해야 한다. 그리고 주시는 선물을 듬뿍듬뿍 받아야 한다. 그래야 피조물로서 세상을 향한 참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영적 성장과 관련한 내용을 1년 6개월 넘게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해 왔다.

꾸준히 강조했던 점이 영성은 바로 생활이라는 점이다. 봉쇄 수도원 생활만이 영성 생활이 아니다. 설거지하면서도, 옷을 입으면서도, 화장을 고치면서도, 자녀 뒷바라지하면서도, 공부하면서도 영성 생활할 수 있다.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영성생활임에도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배우지 않아서다.

구구단을 모르면 수학이 힘들어진다. 영어 단어를 모르면 영어 문법을 배우기 힘들다. 구구단을 외우면 수학을 할 수 있고, 영어 단어를 많이 암기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다.

영성생활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기초를 터득하면 그다음 단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글은 바로 그 기초를 위한 여정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종교를 믿지 않아도 착하게 살면 된다”, “겸손하고 이웃에게 배려하는 삶을 살면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석이 없으면 쉽게 무너진다. 왜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왜 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럴 때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는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

그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변화된다. 매일 아침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내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바보다.

영성 생활은 그 하루에 엄청난 행복과 설렘을 만끽하게 한다. 내일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내일이 주어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 안에 모든 것을 심어 놓으셨다. 당신을 따르도록 이미 형성시켜 놓으셨다. 그 소중한 보화를 꺼내 보기만 하면 된다. 이미 꺼내 본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보화가 얼마나 눈부신지…. (끝)

* 그동안 저와 영성 탐구의 길을 함께 걸어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