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79) 내버려 둬 영성!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입력일 2013-01-08 수정일 2013-01-08 발행일 2013-01-13 제 282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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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체험보다 그것 통해 삶을 변화하는 것이 중요
내가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모든 것 주님께 맡겨야
‘내버려둬 영성’은 영적 분별력의 가장 완성된 모습
초월은 놀라운 것이다. 초월 자체가 신비이기도 하지만, 그 초월의 삶 또한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초월을 추구하는 신앙은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 계시는 하느님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은하계 넘어 엄청나게 멀리 있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어떤 상태에 내가 놓여 있느냐를 묻는 상태적 개념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장소적, 상태적 개념을 뛰어 넘는 신비적 개념이다.

그 엄청난 신비적 개념이 이 작은 내 안에 이미 다 마련돼 있다. 초월의 동력이 이미 내 안에 창조 때부터 부여돼 있다. 이 초월이 나의 눈, 귀, 입, 정신을 하느님을 따르도록 통일시키고 통합시킨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하나로 해 준다.

초월은 이렇게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내 주위에서 작동한다. 현실에서의 초월이다. 저쪽에 있는 초월만 이야기하지 말고 여기서 초월을 이야기해야 한다. 미사를 봉헌하고 초월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초월 체험을 통해 나의 삶이 완전히 변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의 시간, 정신적 시간, 육신적 시간을 모두 종합해 주고 포괄하는 것이 초월적 시간이다. 이 초월적 시간은 태양과 같다. 초월적 시간을 보내면 형성의 장 전체를 비추어 내는 삶을 살게 된다.

신앙인의 또 다른 이름은 태양이다. 신앙인 한 명의 빛이 세상 만방, 전 우주를 밝게 비출 수 있다. 친교가 한정적인 이들이 많다. 내 레지오 마리애, 내 꾸르실료, 내 교사회, 내 성가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신앙인의 빛은 촛불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이 돼야 한다. 초월적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이러한 태양 존재로서의 자각에 이를 수 있다.

정신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 육신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웃과 나눌 것이 적다. 하느님의 뜻을 나눠야 하는데 그들은 그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모른다. 인간적인 것만 몰두해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다분히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초월적 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이 우리를 향해 그러하듯이, 하느님과 합치돼 살아간다.

초월적 신앙은 대단한 그 어떤 것이 아니다. 아등바등하며 살 필요 없다. 그저 하느님의 뜻대로 형성적 삶만 살아가면 된다. 상대방 때문에 고통받을 필요 없다. 남 핑계 댈 것 없다. 그냥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미울 수 있다. 원수처럼 여길 수 있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든 말든 신경 쓰지 말자. 사람이 보기 싫든 말든 나는 하느님과 합치된 에너지를 그냥 펼쳐 보이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과의 합치된 분위기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느님과의 합치에서 힘을 받지 못하면 그 어떤 신앙적 행위도 무의미해진다. 하느님과 합치하지 않는 본당 행사는 사회의 동호회 행사나 다를 바 없다. 그런 것은 사회에서 하면 된다. 하느님과 합치돼 있을 때만이 진정한 나눔이 가능해 진다.

내면에 하느님과의 합치 에너지가 약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준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스트레스 등도 하느님과 합치의 에너지가 적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에 굴복하거나 빨려 들어갈 필요가 없다. 스트레스 받을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영적 에너지 받을 시간이 적은데 스트레스 받을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약간의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하느님과 합치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일을 해 나가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우울증이니, 스트레스이니, 콤플렉스니 하는 말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냅둬(내버려 둬) 영성’을 강조한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분별력 없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영적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영적 분별력의 가장 완성된 모습이 바로 ‘냅둬 영성’이다.

하느님이 치밀하게 당신 신비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우리 삶 안에 이미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갱년기 걱정할 필요 없다. 신앙인에게는 매일 매일이 활기 넘치는 청년기다.

특히 평생 하느님 뜻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살다가 맞은 노년기는 황금기다. 육체, 정신, 마음을 통합시켜서 기도할 수 있는 황금기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을 신비스럽게 그렇게 여정을 완성해 가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