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청소년 영성] 3. 청소년 영성의 복음적 원천

김보록 신부·서울 돈보스꼬 정보문화센터
입력일 2012-02-14 수정일 2012-02-14 발행일 1997-07-20 제 206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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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신비 체험이야말로 첫째 가는 원천
불건전한 욕구의 체계적 실현이 청소년 영성 
산상 설교는 청소년 삶ㆍ영성에 디딤돌ㆍ원동력
▲파스카 영성

모든 영성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즉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적 영성의 근원인 것이다.

청소년 영성의 첫째 가는 원천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세상의 모든 죄악과 고통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여 젊은이는 모든 죄악과 고통을 이겨내, 생명과 기쁨과 희망으로 활기 넘친 영성을 산다. 또한 죽음과 부활로써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최종 목표와 최고의 이상으로 하여 그 모습을 바라보고 본받아 닮아 가며 성장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늘 새 생명으로 살아나 육신적, 정신적, 그리스도적, 영성적으로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삶으로 성장하고 성숙되고 완성되는 것이 바로 젊은이의 매일의 삶이요 매일 매 순간의 노력인 것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10).

그러기 위해 곡 필요한 여건, 항상 부활의 체험과 함께 가는 여건은 죽음의 체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음이 단 하나의 「파스카 신비」를 이루듯이, 이에 참여하는 젊은이의 부활과 죽음의 체험도 서로 떼낼 수 없는 단 하나의 체험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젊은이는 모든 죄악에 죽고, 고통을 감수하여 희생과 극기와 절제를 실행한다. 성장하기 위한 「작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죄악에 대한 죽음」과 「고통의 감수」와 「희생, 극기, 절제의 실행」으로써 젊은이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에 참여한다.

새 세포가 생기기 위해 옛 세포가 죽어야 하고 또 『새 인간이 되기 위해 옛 인간이 죽어야 하듯이』(에페 4, 22~24), 젊은이는 새 인간으로 끊임 없이 성장하고 살아나기 위해 옛인간에 끊임 없이 죽어야 한다. 이 체험을 젊은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함으로써』(로마 6, 8, 11: 골로 2, 20: 3, 1) 실현한다. 이 파스카 신비의 체험이야말로 청소년 영성의 첫째 가는 원천인 것이다.

▲육화의 영성

「육화의 신비」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우주의 「한 요소」와 세상의 「일부분」이 되시어 인류의 「일원」이 되셨기 때문에, 우주와 세상과 인류 전체가 「하느님다운」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존재와 생명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이「하느님다운」 가치를 인정하여, 이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활용하여 이들의 완성과 성화를 위해 힘을 다 하는 것이 「육화의 영성」인 것이다.

젊은이는 본성적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세상 사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성장과 세상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몸 바치려고 한다. 이 젊은이의 본성적 욕구는 생명의 「하느님다운 가치」와 세상의 「육화적인 가치」를 그가 자기 안에 이미 잠재적으로 체험하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 사실을 본인이 얼마나 분명히 의식하고 의식하지 않는지를 막론하고, 젊은이는 하느님의 육화의 신비를 이미 특별한 방식으로 자기 안에 체험하여 살고 있다.

이 본성적이고 잠재적인 「육화의 체험」, 즉 생명의 「하느님다운 가치」와 세상의 「육화적인 가치」를 완치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를 젊은이가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그 욕구를 정리 보완하고, 만약 불건전한 요소가 들어 있으면 이를 배제하여 보다 올바르고 체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청소년 영성」인 것이다.

▲산상 설교의 영성

「산상 설교」는 인간의 상식을 뒤집으면서 참 행복과 참 이상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특히 젊은이는 본성적으로 행복과 이상을 요구하고 이를 열정적으로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자주 시행착오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상식을 따라, 현세적이고 이기적인 일에 행복과 이상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젊은이의 참 행복에 대한 갈망과 참 이상에 대한 동경은 다른 누구의 갈망과 동경보다도 강렬하며, 또 그것을 성취시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이 이유 때문에 「산상 설교」는 누구보다도 젊은이에게 필요하며, 그만큼 젊은이는 「산상 설교」를, 마치 사막의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하여 받아들인다. 「산상 설교」는 그들의 인생길의 인도자가 되고 「신호등」이 된다. 젊은이는 이 「산상 설교」를 늘 앞에 두고 바라 보면서 자기 길을 수정하고 제 길로 돌아와 또 거기에서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한 에너지와 희망을 끊임없이 얻을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써의 「산상 설교」는 숭고한 이상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힘과 은총도 베푸는 것이다.

김보록 신부·서울 돈보스꼬 정보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