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남은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수사다. 나의 3남은 서울교구의 사제다. 이들 두 사람이 만날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는다.
아들 사제가 교구의 방침에 따라 미국에 유학 가서 ‘매스컴’을 주제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치고 최근 9년 만에 귀국하였으므로 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우리집에서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영성생활(靈性生活)을 추구하는 전문가들답게 문외한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에서 오갔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는 받아들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는 그대로 마음속에 품어두어 그 후의 묵상 거리로 남겨두었더라면, 내가 고령자로서 진득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내가 끼어들게 된 얘기의 국면(局面)은, 사제가 ‘이냐시오 영신수련’ 한 달 피정을 가게 되었는데, 수련의 내용에는 예수님의 행적을 상상의 힘을 빌려 실감하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수사는 상상의 기능을 빌려 예수님 체험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연 동의할 수 없다고 분명히 단정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내가 조용히 수도 전문가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즉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수사가 ‘상상력’의 기능을 단정적으로 부정하는 만큼 내가 상상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같이 시를 쓰는 사람이 상상의 기능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상상의 기능에 대해서 간결하게 설명했다. 내가 내세운 ‘상상력의 원리’는 가톨릭 철학과 작크 마리땡의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서, 논거가 빈약한 억지 주장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설명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어도 그것은 처음부터 무익한 일이었다. 수사는 하느님 곁에 가기 위해서는 ‘상상력’ 따위가 아닌 오직 직관력(直觀力)에 의하는 길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내가 수사와 사제의 얘기에 끼어들어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분위기가 서먹해졌고, 결말이 좋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제와 수사의 만남이 끝이나 아쉬움이 남은 채 각자 헤어졌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결국엔 인생의 해결 아닌 해결이 아닐까.
나중에 사제가 나에게 보충적으로 설명을 해줬다. 천주교회의 주류는 아무래도 토마스 아퀴나스, 이냐시오 성인 쪽인데, 이분들은 인간 이성(理性)의 기능과 상상력의 기능을 인정하지만, 성 프란치스코, 성 보나벤투라, 성 십자가의 요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프란치스칸들은 신에게로 가는 ‘직관력’ 이외의 기능을 처음부터 불신하는 입장에 있으며, 이 점에선 프란치스칸들이 교회와도 미묘한 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아! 그러했던가!
그 후 나는 음식점에서 복어 요리를 먹을 때, 복어가 얼마 전에 있었던 두 ‘파’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비유’의 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누구나가 잘 알고 있다시피 복어는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 독을 잘 다루기만 한다면 복어는 일품요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복어를 즐겨 먹는다. 반면에 독이 있는 복어는 처음부터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우리는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에서 처음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절대 안전한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상상’의 영역은 그것이 화려한만큼 마귀의 놀이감이 되기도 쉽다. 문학의 사조(思潮)인 ‘악마주의’, ‘탐미파’ 따위의 이름만 들어도, 또 이들에게 영혼을 맡긴 보드레르, 에드가 알란 포, 오스카 와일드 등의 천재들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상상에는 분명 복어처럼 독이 숨어 있다. 결과야 어떠했든 괴테의 ‘파우스트’도 마귀의 괴수에게 우선 영혼을 팔아버리지 않았던가.
…그렇지, 안 먹는 게 제일 안전하지. 그러나 나는 이미 복어를 먹어온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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