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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 (37) 남이 나다

성찬경(시인·예술원 회원)
입력일 2012-01-18 수정일 2012-01-18 발행일 2012-01-22 제 278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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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노인에서 더 노인이 되어갈수록 왠지 ‘남이 나다’ 하는 말이 실감으로 떠오른다.

‘남이 나다’ 하는 말은 물론 ‘내가 남이다’ 하는 말을 뒤집어놓은 꼴이어서 같은 뜻이다.

노인이 되어갈수록 능력 면에서 본 인간의 상품가치는 떨어진다. 이제 활동력, 기동력, 상상력, 창의성, 그리고 오락권(娛樂權, 인생을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권리)까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날이 그날처럼 가만히 앉아서 무사히 지내는 것만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때가 많아진다. 갈수록 살아가는 처지와 모습이 비슷비슷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죽는 순간이 오면, 모든 사람이 완전히 같은 처지로 환원된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제 시간이 끊어졌으므로 미래의 가능성 제로. 죽음 앞에선 그야말로 왕도 없고 부자도 없고 거지도 없고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가련한 것 (a helpless thing)에 불과하다. 늙으면 나와 남을 섞어도 잃을 것도 손해볼 것도 별로 없으니 남이 나다 하는 실감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내가 요새 ‘남이 나다’ 하고 자주 중얼거리는 것은 이러한 공리적인 타산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타산적인 잣대로 조금 더 따져보기로 하자.

머리가 조금만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현명함을 조금만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곧 나 스스로를 돕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은 실존주의 철학가 싸르트르도 역설한 바다.

인간의 심리는 정밀한 기계장치와 같다. 거기에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용한다. 내가 남에게 잘해주면 감사하고 감동하는 나머지 남도 나에게 호의로 대해온다. 남이 나에게 호의로 대해오면 감사하고 감동하는 나머지 나도 남에게 후의를 베푼다. 그러니 내가 남에게 잘 해주면 그것이 곧 나에게 이로운 방법이다. 이타(利他)가 결국 이기(利己)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새 내가 ‘남이 나다’ 하고 중얼거리는 것은 이러한 얄팍한 타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좀 더 깊은 뜻이 있다. 내가 남에게 작은 호의를 베푸는 것은 그러한 호의 자체가 좋은 일이며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일이 돌고 돌아 내가 보상을 받기 전에 이미 나는 그 일 자체로서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결과를 바라지 않고 선한 동기를 위해 선한 일을 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3백년 쯤 지속이 된다면 지상에는 어떠한 사회가 출현할 것인가?

남을 돕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기쁨을 찾는 마음이 바로 ‘아가페’의 원리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스승 예수님이 평생을 바쳐 설법하시고 실천하신 것도 바로 이 ‘아가페’다.

사랑은 사실 받는 기쁨이 아니라 주는 기쁨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그리고 이 일을 완벽하게 실천하신 전형(典型)이 예수님이시다.

지금까지 내가 내 마음의 비밀을 다 고백한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가 남아 있다. ‘남이 나다’ 하는 이런 실감도 작은 깨달음인데, 내가 젊었을 때 이러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음에 따라 어느 틈에 그러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따라서 내가 헛되이 늙은 것만은 아니라는 자부심도 갖게 되어 이점도 나는 기쁜 것이다.

성찬경(시인·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