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전교주일 기획Ⅰ] 수원교구 산본본당 방문선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1-10-19 수정일 2011-10-19 발행일 2011-10-23 제 276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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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선물로 닫힌 교우들 마음을 열다
활동 1년 6개월 만에 냉담교우 735명 회두
방문자는 교계잡지·사제 친필편지도 전달
끊임없이 기도할 때 선교 성과 제일 좋아
냉담교우. 한국교회에서는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이들을 냉담교우라고 부른다. 이렇게 냉담을 하는 이들이 한국교회 신자 수의 약 30%에 이른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 냉담교우 회두는 중요한 선교활동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냉담교우 회두는 새 신자 찾기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냉담교우에게는 새 신자에게는 없는 ‘성당에 가지 않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냉담교우들을 포기하지 않고 방문선교를 통해 회두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수원교구 안양대리구 산본본당(주임 이병문 신부)이다. 산본본당은 1년 6개월 만에 735명의 냉담교우를 회두시켰다. 이는 본당 내 냉담교우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전교주일을 맞아 산본본당 방문선교 봉사자들을 만나 방문선교의 모습을 들었다.

변희옥(도미니카)씨는 냉담을 한 경험이 있었다. 식당을 경영하면서 성당에 나갈 시간이 없었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며 힘겹게 받은 세례였지만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당에 나가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성당을 떠나 흘러간 시간이 자그마치 20년이었다. 그렇게 냉담하고 있던 중에 변씨를 찾아온 것은 같은 소공동체의 반장이었다. 반장은 변 씨가 일하는 가게에 들러 인사하고 매일같이 편지함에 손수 쓴 카드를 넣어줬다.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사람. 어떻게 보면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관심이 20년 냉담을 푸는 열쇠가 됐다. 냉담을 푼 변씨는 반장도 맡았고, 지금은 구역장을 맡고 있다. 게다가 변씨는 지난 2년 동안 9명의 새 예비자를 인도하고 2명의 냉담교우가 다시 성당을 찾도록 도와 선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변씨 뿐만이 아니었다. 방문선교 봉사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냉담의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냉담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봉사자들은 냉담교우 가운데 열의 아홉은 주일미사를 몇 차례 빠지기 시작하면서, 직업상 주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워 점점 성당에서 멀어지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런 신자들 중에는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정말 사소한 계기로도 누구나 냉담을 하게 될 수 있지만 그 냉담에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을 도와줄 이들이 필요했다.

“안녕하세요. 성당에서 왔는데요.”

산본본당의 방문선교는 각 소공동체 별로 특히 반별로 이뤄졌다. 아파트 단지 특성상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냉담교우의 집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건물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한 건물에 한 반으로 편성된 소공동체 구역이 유용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냉담교우 문 앞에 도착해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번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필요 없어요.”, “다음에 갈게요.”, “애들 공부하는데 방해되니까 오지 마세요.”

거절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어떤 냉담교우들은 불같이 성을 내며 쫓아내기도 했다.

산본본당 소공동체 부회장 김일향(카리타스)씨는 “소극적 냉담교우들은 자주 찾아가면 미안해하고 점점 마음의 문을 여는데 적극적 냉담교우들은 모시기 쉽지 않다”며 “적극적 냉담교우들은 대부분 본당에서 상처를 입고 떠난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소극적 냉담교우의 경우 성당에는 나오지는 않더라도 여러 번 찾아가면서 신뢰관계를 쌓아가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면 본당 행사 등에 초대하는 등 점진적으로 회두시키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 냉담교우의 경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교우 간의 상처보다 성직자, 수도자와의 상처가 깊을수록 천주교에 대한 반감을 크게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문이 열리면 그때부터 봉사자들의 발길이 더욱 바빠진다. 산본본당 방문선교 봉사자들의 무기는 선물과 기도다.

산본본당은 방문선교를 위한 ‘선교비’를 활용하고 있다. 또 본당 예산으로 교계잡지 350여 권을 구매, 냉담교우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특히 소극적 냉담교우의 경우 선교비로 마련한 ‘신부님이 보낸 선물’은 특효약이다. 많은 냉담교우들이 ‘신부님이 보낸 선물’ 혹은 ‘신부님의 친필편지’ 등에 크게 감동했고 봉사자들은 그것을 계기로 회두한 냉담교우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봉사자들은 이렇게 선물을 들고 찾아가고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하는 작은 관심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냉담교우의 굳어진 마음을 적실 수 있다고 했다. 산본본당 선교분과장 김은영(헬레나)씨는 “방문선교에는 봉사자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물적 지원도 반드시 뒤따라야 하지, 맨손, 맨입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성당에서 주는 떡’이나 ‘신부님이 보낸 화분’ 같은 것을 선물하며 찾아갈 때 선교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냉담교우 회두에 물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영적인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방문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봉사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한 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다. 산본본당은 냉담교우 회두를 위한 고리기도를 바치고 있다. 또 방문봉사자들은 냉담교우의 집을 방문해 함께 기도하고 방문한 집에 사람이 없으면 문 앞에서라도 서서 기도했다. 김일향(카리타스)씨는 “꼬박꼬박 끊임없이 기도하는 공동체에서 선교 성과가 제일 좋았다”며 “철저한 준비와 기도가 방문선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방문선교 봉사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냉담교우가 회두하는 순간이다. 수많은 냉담교우들을 만나고 회두시켜온 봉사자들이지만, 봉사자들은 냉담교우가 돌아오는 것을 자신들의 공로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냉담교우가 돌아올 때 하느님을 느끼고 감사했다.

홍경숙(클라라)씨도 그런 체험을 한 사람 중 하나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장을 보러 나온 홍 씨는 매장에서 우연히 방문선교를 하던 냉담교우를 만났다. 평소에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냉담교우와 만난 홍 씨는 냉담교우의 자녀 이야기에서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또 어느 날 갑자기 필요한 것이 생각나 매장에 나가 다시 냉담교우를 만난 홍 씨는 처음에 사려고 했던 것도 잊은 채 냉담교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냉담교우는 바로 냉담을 풀었다. 홍씨는 “정말 자기도 모르게 냉담교우를 만나게 된 것에서 하느님의 이끄심을 느꼈다”며 “선교에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크신지 우리의 노력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1년 동안 냉담교우 5명의 회두를 도운 나명화(루피나)씨는 방문선교 자체만으로 회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신앙이란 게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 돌아오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돌아올 수 있도록 누군가 살짝 건드려 주는 것이 방문 선교지요.”

산본본당 방문선교 봉사자들이 자신의 봉사체험을 나누고 있다.
방문선교 봉사자들은 한결같이 방문선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라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냉담교우가 부재 중 일때는 문 앞에 서서라도 기도했다.
꾸준히 우편함에 넣어주는 주보, 잡지, 편지 등은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냉담교우들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