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83·끝)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4)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입력일 2011-06-01 수정일 2011-06-01 발행일 2011-06-05 제 274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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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속에 무지(無知)의 섭리 깨닫다
내면 형성·모든 인류 회개 위해 기도하고 신적 신비의 아름다운 삶 온전히 드러내
소화 데레사가 수도원 생활을 통해 집중한 것은 기도와 극기였다. 그녀는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형성을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내면형성에 이르는 원의와 방법, 결실은 모두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데레사 성녀 자신의 하느님과의 합치에 대한 갈망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데레사 성녀는 자신만의 내면형성에 만족하고 주저앉지 않았다. 모든 인류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녀가 한 것은 오직 기도였다. 충만한 내면형성의 기반 아래서 이뤄지는 절절한 기도였다. 그녀의 몸은 수도원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세계를 누볐다. 데레사는 수도원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동료 수도자들은 물론이고 세계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또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데레사에게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17세 정도 되었을 때였다. 평생동안 막내딸을 위해 끊임없는 애정을 쏟아주시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후에 선종하신 것이다.

데레사는 힘들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딸들을 수도원에 봉헌했고, 평생동안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고통 받다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데레사는 ‘하느님은 무슨 깨달음을 위해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데레사의 큰 영적 도약이 이뤄진다. 진정한 무지(無知)의 섭리를 깨달은 것이다. 사실 유한한 인간으로선 무한한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데레사는 깨달았다. 나는 ‘nothi ng’이다. 나는 ‘무’(無)요 ‘공’(空)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알면 알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어 구어에서 ‘nothing’은 ‘하찮은’ ‘쓸모없는’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everything’이시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다. 가장 소중하신 분이다.

인간적 시각에서 보면 하느님께서 데레사에게 준 것은 거의 없었다. 데레사는 거의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하느님은 태어날 때부터 약한 몸을 주셨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공부에 매진하지도 못했다. 인간적으로 가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가장 크고, 가장 소중한 것을 데레사에게 주셨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래서 데레사 성녀는 글을 통해 자신은 어둠 안에서 빛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데레사는 천하고 힘든 일도 기쁘게 했다. 사소한 일도 충실히 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기도에, 온 정성으로 매달렸다.

이런 고백은 얼핏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영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데레사 성녀는 작은 길을 선택했지만, 작은 길을 섭리 받았지만, 그 작은 길 안에서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신비적인 삶을 온전히 드러내신 분이다. 인생은 길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큰 업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명예와 부를 위해 매진하라고 주어진 인생이 아니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뜻을 깨닫고, 영적인 차원의 성향을 잘 길러 가면서 짧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과 완전히 합치되신 분이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던 분이셨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융화를 통해 참된 역량을 발휘했다. 또 진리에 고개 숙였으며 자신의 뜻을 교만하게 주장하지 않고 늘 개방되어 있었다. 모든 사건 앞에서 순명했고, 욕심이 없는 단순함을 유지하셨다. 깨달은 바를 확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드러내셨다. 이웃을 존경하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들추어내지 않는 사밀함(privacy)의 성향을 가지셨다. 작지만 진정으로 위대하신 분이셨다.

이것으로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쓰는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