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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성지] 3. 당고개

갑을임 기자
입력일 2011-05-27 수정일 2011-05-27 발행일 1983-09-18 제 137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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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0명 순교한 성지
태반이 순교자 친지들
3번째 많은 복자 탄생시킨곳
현 위치엔 개신교 교회만 우뚝솟아 있을뿐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외치며 의연하게 죽음을 택한 신앙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는 聖戰의 마당들. 더욱이 순교복자들의 거룩한 피로 적셔진 순교지는 단 한 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곳이라도 더없이 귀중한 신앙의 텃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복자를 탄생시킨 영광의 땅, 당고개는 시성의 영광이 눈 앞에 다가온 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어 뜻있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堂峴、속칭 당고개는 홍병주(베드로) 홍영주(바오로) 회장 형제를 위시한 10명의 복자가 1백40여년 전 썩어 없어지지 않을 월계관을 받아 쓴 곳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계동 일대, 즉 용산구청에서 기독교 대한 감리회 성산 감리교회에 걸친 지역으로만 추정되고 있을뿐 순교선열의 피로 적셔진 거룩한 땅이라고 느낄 수 없는 오늘의 당고개는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잊혀진 성지가 되고 말았다.

광주산맥의 끝줄기에 위치한 서울은 주변에 크고 작은 산이 많았고 도성 내에도 여러 고개가 있어 기복이 심한 지형이었다. 한양도성 남부에 위치한 고개 중의 하나였던 당고개는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가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지던 기해박해때 주로 서울도성 남부지방에서 체포된 교인들이 참수, 순교한 장소이다.

당고개에서 순교한 첫 순교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39년 기해박해때의 순교자임에는 틀림없을 것으로 믿어진다. 거듭되는 군난을 피해서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안양 수리산 깊숙한 골짜기 담배촌에 은거했던 최양업 신부의 부친 복자 최경환의 일가와 교우들은 서울로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최경환 등 다수가 옥중에서 순교했다. 그들 중 끝내 신앙을 꺾지 않은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를 위시한 나머지 교우들이 당고개에서 망나니의 칼날 아래 쓰러졌다.

그러던 중 1840년 1월 31일과 2월 1일, 1841년 4월 29일 각각 당고개에서 참수, 또는 교수로 순교한 권진이 이경이 이인덕 박종원 홍병주 홍영주 손소벽 이문우 최영이 김성우 등 10명이 복자로 시복되어 당고개는 영광의 땅이 되었다.

그런데 당고개에서 순교한 10명의 복자들은 태반이 순교자의 집안사람들이라는 점이 주목 할만하다. 홍병주ㆍ영주형제는 순교자의 조카와 손자이며 손소벽ㆍ최영이 모녀는 각각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복자 최창흡ㆍ조신철의 아내였고, 이인덕은 복녀 이영덕의 동생, 권진이는 복녀 한영이의 딸, 박종원은 복녀 고순이의 남편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순교의 길을 걸어 1925년 79위 시복식에서 나란히 복자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입었다.

또한 이들은 한국천주교회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지도자는 아니지만 회장ㆍ신학생ㆍ동정녀ㆍ부인 등의 신분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충실한 삶을 살았던 크리스찬이었기에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단 한 명의 순교자가 순교했다 할지라도 그 순교지가 지니는 의의는 한결같은데 서울의 순교성지는 널리 알려져있는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ㆍ절두산과 함께 후예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당고개는 이름 조차 생소한 채 잊혀져야 하는가?

높게 쌓은 축대와 층계、꼬불거리는 좁은 길만으로 당고개의 옛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용산구 신계동 언덕에는 감리교회가 우뚝 솟아 있다. 현지 주민들도 단지 교회자리가 일제 시대 신사가 있던 곳이라고만 알 뿐 자랑스러운 우리 순교선열의 피로 적셔진 영광의 땅임을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한국순교자 현양위원회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순교지 당고개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곳에 순교자들의 얼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과 1백3위 복자의 시성을 앞두고 3백년대의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원동력인 순교정신이 살아 숨쉬는 영광의 땅을 되찾으려는 후예들의 노력은 참으로 시기 적절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동시에 순교자를 기리는 신자들의 뜨거운 지향과 열심한 기도가 그날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뒷받침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당고개에서 순교한 복자 10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1840년 1월 31일 순교자(괄호안은 세례명ㆍ순교 당시 나이)=권진이(아가타ㆍ21) 이경이(아가타ㆍ27) 이인덕(마리아ㆍ22) 박종원(아우구스띠노ㆍ48) 홍병주(베드로ㆍ42) 손소벽(막달레나ㆍ39)

▲1840년 2월 1일 순교자=홍영주(바오로ㆍ39) 이문우(요한ㆍ31) 최영이(바르바라ㆍ22)

▲1841년 4월 29일 순교자=김성우(안또니오ㆍ47)

갑을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