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노인존중’ 국민운동 펼쳐야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11-05-23 수정일 2011-05-23 발행일 2000-10-08 제 222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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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77세 노인에게 꾸중을 들은 중3학생이 노인을 따라 전철에서 내린 뒤, 뒤쫓아가 승강장 계단에서 밀어뜨린 사건이 있었다.

등을 차인 노인은 10여m 아래로 굴러 떨어져 뇌출혈을 일으켰고 불행히도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철부지 소년이 욱하는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나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보기에 민망하고 어색한 언쟁이 지하철 안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노약자 지정석」앞에서 젊은이와 노인이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이같은 언쟁을 그저 어설픈 해프닝이라고 보아넘길 수 있을까.

우리는 외국인에게 우리나라를 소개할 때 곧잘 「동방예의지국」이라거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들먹인다. 그러나 요즘도 이런 단어는 유효한 것일까?

오느르이 우리 문화 예절 수준을 평가한다면 조금 심하게 말해서 「동방의 야만지국」내지는 「시끄러운 한낮의 나라」정도는 아닐까?

충효(忠孝)와 더불어 경로사상은 우리가 오래 가꾸어온 가치관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같은 가치들을 이제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폐습인양 홀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생각을 무조건 틀렸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기성 가치체제가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악용돼 온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통치자는 「충」을 국가 아닌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교묘히 변질시킨 바 있다. 또한 「효」가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충」과「효」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21세기 어느 문명사회건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의 효도를 주요 덕목으로 삼지 않은 곳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이를 구현하는 방식과 가치의 우선순위 정도일 것이다.

경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침 지난 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였다는 사실은 「노인존중」이 전 문명의 공동관심사임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다만 이 시점에서 고려할 사항은 『나이 많은 분이니 무조건 공경하고 따르자』는 식의 주장이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왜 노인을 우대해야 하는지 기본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1982년 유엔은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에 대응해 제1차 「고령화 세계총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바 있다. 그후부터 각국의 고령화현상은 유엔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오고 있다. 1991년 유엔총회에서 1999년을 「세계 노인의 해」로 선포했고 「노인을 위한 유엔의 원칙과 고령화 관련 국제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매년 10월 1일을 세계노인의 날로 선포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유엔에서 전개해온 고령화 대응책을 잘 모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유엔이 제시한 각종 프로그램과 그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등한시하게 됐다.

우리나라 자체의 노인의 날은 1997년 노인복지법 개정에 반영되면서 10월 2일로 정해지게 됐다. 1997년 이후 노령화에 대한 유엔대책과 행동계획을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노인복지 증진의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에서였다.

1997년부터 노인의 날을 지키기 시작해 올해 4회째를 맞이했다. 게다가 우리사회는 전체 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어 유엔이 규정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온 노인의 날은 유엔의 세계 노인의 날과 우리 자체의 노인의 날을 맞는 의미가 크게 퇴색되어 가고 있다.

이제 의례적인 기념행사에 치우친 노인의 날을 지양하고 「경로」를 주제로 한 국민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때다.

노인은 우선 이런이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다. 신체, 정신적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력도 대부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약자인 노인을 부축하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의무다.

경로대상인 이 시대 노인들의 삶도 되짚어 보자. 올해 만 65세가 넘는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절에 태어나 소년, 청년기에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다. 경제성장기에는 베트남의 정글에서 중동의 열사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사회적 부를 축적했고 민주화를 뒷받침했다.

그래서 그들은 젊은 세대에게 존경받고 보상받을 자격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묵은 가르침」때문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 때문에 노인을 우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인권국가로서 위상을 정립할 수 있고, 「동방예의지국」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자부할 수 있다.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