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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물가고

유계완ㆍ한국가톨릭여성연합회 회장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78-10-01 제 112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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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데서 풍부함 느끼는 지혜가 바람직
맛있는 음식도 많을땐 인기없는 심리이용
물가고를 지혜롭게 이겨나가야 한다고들 하지만 이러한 지혜도 정신적인바탕에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각각 처해져있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형편이 형형색색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나의의견을, 내놓는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납득이 갈수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부족함보다는 풍부한 것이 좋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풍부함 속에서의 즐거움보다 부족한데에서 짜낸 지혜로 풍부함을 누렸을 때의 즐거움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것 같다.

나의경우 항상 풍요롭지만은 않았던 35여년의 가정생활을 통해 하나의 특이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치솟기 만하고 내려간 일이 없는 물가고는 짜증과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것인데 우리주부들은 뒷전에서 짜증만내고 가족들에게 화풀이만 거듭해왔을 뿐 그 누구하나 기상천의의 물가대책을 내놓지도 못했고 많은 여성단체를 또한 강력한 결의문이나 호소문한번 제대로 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늘 불평하며 말로만물가고를 한탄해왔을 뿐 외국여성들처럼 철저한 불매운동도 못해보고 약하게 순종(?)만하고 있다하겠다

그러나 당장 강력한 여성의 파워를 내세워 물가를 억제하기보다는 주부스스로가 불평없이 지혜롭게 이 물가고의 난관을 이겨나가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가정에서 밥이 조금 넉넉히 지어졌을 때 더 찾는 식구가 없고, 냉장고에 고기가 넉넉할 때 고기요리는 잘 팔리지 않았고, 하다못해 떨이 과일을 사다놓으면 잘 먹어주던 아이들도 과일을 쳐다보지도 않았음을 우리 주부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새삼 헌옷을 뜯어 재생하고, 김칫거리도 요긴한 만큼 청과물도매시장에서구입하고, 생선은 이웃과 공동으로 싸게 사 나누고, 간단한 집수리는 주부 손으로 하는 등등의 절약하는 방법은 증언부언 덧붙이지 않기로 하고 바로 앞에 말한 심리를 최대한 이용해야 되겠다. 나의 경우 이 심리를 적절히 이용했다고나 할까 늘 모자라는 것을 갖고 내 가정에 즐거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꽉 찬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계속되는 물가고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웃사랑은 비롯 작은 것일지라도 내 것을 나눌 수 있고 결국 내가정의 모자람을 풍부함으로 이끌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무한한 사랑의 용광로 속에 물가고를 넣고 녹일 수 있어야 하겠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기승을 부리는 물가고도 머리를 숙이게 되리라 생각한다.

유계완ㆍ한국가톨릭여성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