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3년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특집]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듣는다 (14) 아련한 사목방문 (상)

정리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1-03-09 수정일 2011-03-09 발행일 2011-03-13 제 273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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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방문은 매년 했어요. 매년 4월 즈음부터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실시했지요. 매번 본당(24개)을 다 돌았으니 일 년에 한 번씩은 방문한 셈이네요. 그때 맞춰서 견진성사도 집전했어요.

당시 교구 신부들 중 차를 갖고 있는 이는 김효신 신부(당시 용인본당 주임)뿐이었지요. 그 신부만 지프 한 대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부임 초에 김 신부와 함께 큰 본당 몇 군데와 공소 중 가장 큰 공소들을 찾아다녔지요. 어느 날 백암(당시 공소)에 사목방문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오르게 됐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북향이니 길이 얼었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김 신부에게 조심하라고 이야기 하려는 순간 그 지프가 미끄러졌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길옆에 쪼그려 앉아있었기에 그를 피하느라 길옆으로 차가 빠진 것이지요. 다행히 깊이 빠지지는 않았어요. 눈이 많이 와서 차가 자꾸 미끄러지니까 사고가 생긴 것이지요.

그때 오스트리아의 미바(MIVA)와 오스트리아 부인회에서 우리를 많이 도와줬는데, 이후에는 미바에서 지프(랜드로바) 9인승을 받아서 그걸 타고 다녔어요.

당시에는 도로사정이 너무 불편했지요. 포장된 길은 수원-서울 간 국도 1호선밖에 없었어요. 신림동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비만 오면 물이 많이 고이는 등 형편이 없었지요. 게다가 지프차에는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에는 창문을 열고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먼지가 들이쳐서 검은 양복이 누렇게 변할 정도였어요. 장호원본당을 찾아갈 때는 출발할 때 간단한 옷을 차려 입고, 도착할 때 쯤 개울가에서 다 씻어낸 뒤 흰 수단으로 갈아입은 채 성당에 들어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양평 가는 길에는 이포나루가 있었지요. 그곳은 차를 실을 수 있는 나무배만 있고 다리는 없었어요. 여주까지 가야 다리가 있었지요. 그래서 지프를 배에 싣고 건너갈 수밖에 없었어요. 양평 혹은 용문본당을 찾아갈 때 이포나루를 가끔 이용했지요.

사목방문에 나설 때마다 시골 정취가 너무 좋았어요.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지요.

초대교구장 시절 본당 방문 기념 사진.

▶다음호에 계속

정리 이우현 기자 (helen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