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 기쁨 주고, 기쁨 받고

입력일 2011-03-01 수정일 2011-03-01 발행일 2011-03-06 제 273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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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의 말 한마디는 서로에게 기쁨을 선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일찍이 영세를 했지만 그 말이 그냥 주님의 이름이거니 했습니다. 뒤늦게 성경공부를 하면서야 그 정확한 뜻을 알았는데, 그리스도는 히브리말 ‘메시아’를 번역한 그리스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 해방자, 구원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주어와 서술어를 갖춘 하나의 문장으로 그 속엔 엄청난 신앙고백이 들어 있었지요. 즉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말로 한다면 ‘예수는 구원자이시다’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으로 돌아서겠다는 결심이겠지요? 그렇다면 영세 후, 맨 먼저 나타나야 할 외적 변화는 무엇일까요. 저는 서슴없이 ‘기쁘게 사는 모습’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땄으니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을까요. 덕분에 지엄하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어 세상에서 제일 큰 ‘빽’을 얻었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하느님 나라의 의를 구하며, 온갖 탐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으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에서 슈퍼마켓을 털다가 붙들린 강도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강도짓을 하려고 들어갔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느냐, 있다면 어느 때냐, 하는 질문이었다지요. 95퍼센트가 ‘네’라고 대답했는데, 주인이 방긋 웃으며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할 때 도저히 총을 들이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강도도 막아주는 웃음의 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우리 속담 그대로이지요.

저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 짓고, 잘 아는 사람이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상가에 조문을 갔을 때이지요. 상주를 보고 웃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빈소에 들어설 때 단단히 조심을 하게 됩니다.

근래에는 웃음치료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립니다. 아무 이유없이 웃기만 해도 엔도르핀이 솟아 병을 치유한다는 것이지요. 건강을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웃는 억지 웃음보다야, 모든 것 주님께 의탁하고 마음 편히 살면서 저절로 나오는 자연산 웃음이 더 보약이 아닐까요?

저는 어떤 고통이 덮칠때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이 암흑의 터널 끝에 주님께서 분명 더 밝은 빛의 세계를 마련해두셨을 거야…. 이 믿음이 제가 고통을 견디는 힘입니다. 그러기에 터널 속에서도 희망 안에 살면서 웃음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얼굴빛은 마음의 거울! 안색을 보고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모든 것 하느님께 의탁하고 묵주기도 한 바퀴만 돌리면 마음이 가라앉지 않던가요. 사실 아집만 버리면 평화는 저절로 옵니다. 그러면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 있고, 그런 모습은 이웃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지요.

물론 돈과 시간을 들여서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훨씬 값진 선행입니다. 그러나 오직 웃는 얼굴, 밝은 표정만으로도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거기에 한 걸음만 더 나가 긍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칭찬의 말, 축복의 말 한마디는 서로에게 기쁨을 줍니다. 남을 칭찬하고 축복할 때면 말하는 자신이 먼저 기뻐지기 마련이니까요.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고!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과 기쁨 주고, 기쁨 받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