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

입력일 2011-02-09 수정일 2011-02-09 발행일 2011-02-13 제 273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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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아름다운 귀향 잘 준비해서 우리 주 하느님께로”
한파가 계속되던 1월 중순, 어느 수녀님의 초대를 받고 대학로에 나가 감동적인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그분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소속으로 제 선배의 제자이고, 저의 독자이기도 해서 두 사람이 함께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 두 시간 거리의 길을 나섰습니다. 전철 속에서 선배는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스승의 날, 내 책상 위에 사탕바구니와 카드를 놓고 갔어요. 오래 전의 제자라 생각이 안 나서, 서무실 창고를 뒤져 생활기록부를 찾아보았지요. 성적도 좋았지만, 내가 써 놓은 글을 보니 훌륭한 제자였어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활달한 성격이다. 경우 바르고 사려 깊어 친구들도 모두 좋아한다.’는 글이었지요. 그 뒤 가끔 만났는데, 수도원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힘들겠지만 보람 있게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면서요. 그게 바로 우리나라에 호스피스를 처음 도입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였지요. 죽음에 임한 환자들을 돌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얼마나 씩씩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는지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러운 분이셔요.”

창고를 뒤져 어떤 학생인가를 확인한 선생님도 대단하고, 궂은일에 뛰어든 제자도 대단합니다. 극장 입구에서 만난 수녀님은 듣던 바대로 화통하시고 기운차 보이셨습니다. 제 신사임당 소설을 읽고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며 활짝 반겨주시니 얼었던 몸이 다 녹았지요.

연극에는 네 사람의 죽음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영아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어머니’ 소리 한 번 불러보기가 소원인 20대 청년, 남편과 자식을 두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40대의 젊은 엄마, 자식을 버려서 죗값을 치른다며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할머니, 치매에 걸려 호스피스 병원에 맡겨진 재력가 할아버지 등입니다. 수녀님들이 직접 겪은 체험담을 책으로 엮은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동한 어떤 제작자가 손익 계산도 없이 무작정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수녀님들의 발랄하면서도 진지한 모습과 환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환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돌보는 수녀님의 입장에서, 때로는 남은 가족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했지요. 삶은 어쩜 그렇게 다양할까요. 영화나 연극을 볼 때, 우리는 인생을 배웁니다. 이번에는 특히 죽음에 대한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실은 저도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 시쳇말로 ‘지공’을 넘기면서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입시를 치렀습니다. 대학 입시가 제일 어려운 줄 알았지만, 취직 입시가 있었고, 그보다 더 어려운 결혼 입시가 있었고, 이제 생의 마지막 자락에 오니 다시 그보다 더 어려운 죽음 입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왔던 곳,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귀향 입시’라 명명하고 ‘아름다운 귀향’을 위해 수험생 노릇을 하면서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물질이건 마음이건 버리고 비우는 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 등에 신경을 쓰고 있지요.

그런데 이 연극을 보고서는 또 다른 면의 준비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혹여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일은 없는지, 화해가 필요한 이는 없는지, 보고 싶은데도 그냥저냥 세월만 보내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등등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관계에서의 일을 푸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하지요. 실제로 이 연극을 연습하는 동안, 배우들 몇 사람이 소원했던 가족과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연극은 성공한 것이지요. 연극 속에 나오는 레오날드 다빈치의 말이 아직도 귀에 삼삼합니다.

“잘 지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 오고, 잘 살아온 인생이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