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대희년을 배웁시다 (28)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박영식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10-10-21 12:00:00 수정일 2010-10-21 12:00:00 발행일 1999-10-17 제 217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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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이신 ‘야훼’ 하느님
오랜 옛부터 인간에게 가장 큰 관심사가 된 것은 「이름」이다. 우리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라고 할만큼 모든 이에게 이름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성서한에서는 물론(창세 11,4 12,2 참조)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불멸의 이름」을 남기는 것을 인간이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최대의 과제요 미덕으로 생각했다.

성서 문화배경에서 볼 때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지 순수하게 호칭으로 남는 예가 없다. 사람의 경우 이름을 정하고 변경하는 것은 주체의 변화를 가리키며, 수행해야 할 사명을 부여한다는 것과 새로 받게 되는 새로운 능력을 가리킨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하며, 그 사람 자신이 지닌 배경과 연관해서 생각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고대 세계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 사람에게 어떤 힘을 행사할 수 잇게 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느님께서 야곱과 씨름을 하시고「야곱 」이라는 그의 이름 대신 「이스라엘」이름으로 고쳐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으셨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창세 32,29~32).

그런데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참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하느님이 이름이 다양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서 신비스러운 분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

사실 한 가지 이름만으로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인간이 충분히 그려낼 수가 없었다. 하느님의 여러 명칭들 중에 이스라엘 백성과 연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훼」이다. 모세가 이름을 물었을 때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야훼」(JHWE=주임) 하느님이다』(출애 3,15).

「야훼」라는 단어는 하느님이 매우 거룩하신 분임을 표현하지만, 철저하게 호월적인 하느님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그분의 이름은 이스라엘을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고 뭇 민족들 가운데서 그들을 뽑아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신 역사적으로 모든 위대한 사건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으로 「알고」있어야 하는 분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이 누구시냐고 묻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출애 3,14)라고 말씀하신다. 초인종 소리에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귀가하는 「부모」는 「나다!」라는 한 마디로 대답하고 식구들은 죽시 그가 누구인지를 안다. 「야훼」라는 단어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엄밀히 말해 「야훼」는 하느님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그분의 정체성을 제시하는 표현이다. 곧 「야훼」하느님은 모세와 그 백성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아버지」인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한다는 것은 인격체로서의 하느님 자신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고유한 것, 하느님의 것을 가리킨다. 만일 하느님께서 이미 거룩한 분이시라면, 그분이 어떻게 또 거룩하게 되실 수 있는가?

「거룩하게」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첨가함으로써가 아니라, 백성이 이 거룩하심에 더욱 크게 참여함으로써 실현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거룩하심이 그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널리 확산되고 실현되기를 아버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박영식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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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