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교회 창립 선조를 찾아서] 1. 이벽 (8)

입력일 2010-01-05 수정일 2010-01-05 발행일 2010-01-10 제 2680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신앙에 대한 신념 굽히지 않자  아버지가 이벽을 사랑방에 감금
이벽 성조가 천주교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자 아버지 이부만 공은 아들을 감금하기에 이르렀다. 사진은 천진암성지 전경.
이벽 성조의 아버지 이부만공은 문중회의에 사람을 보내어, 아들이 병으로 갑자기 누어서, 몸이 몹시 불편하여, 문중회의에 나가서 자명소를 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고, 거짓 핑계를 대는 동시에, 아들이 앞으로 천주학을 안하기로 하였으니, 믿어달라고 전하게 하였다.

그러나 문중회의에서는 강경파들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한편, 만일 갑자기 병이 나서 회의에도 나올 수 없을 정도라면, 광암 이벽 성조의 달필을 누구나가 다 잘 아는 바이니, 직접 글로 써서, 천주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라고 요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 이벽 성조에게, 붓으로 천주학을 하러 나가지도 않을 것이고, 또 천주학을 다하지 않겠다고 써서, 종친회에 보내라고 하자, 이벽 성조께서는 령득경신이라는 글을 지어내니, 이것은, 천주를 공경하는 방법과 순서를 알게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이부만공은 이 글을 보고는 크게 분노하며, 이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까지 극언을 하였다. 그러나 가정의 운명 때문에 문중회의에 이를 알릴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문중회의에 사람을 보내어 아들이 갑자기 병이 더욱 심하여져서, 붓을 잡고서 떨려서 글도 쓸 수 없을 정도이니, 그리 알고 천학운동은 안하기로 하였으니 아비가 책임을 지는 이상, 믿고 의심하지 말라고 전하게 하였다. 그러자 종친회에서는 더욱 의심을 하며 격분하였다. 그렇게 건강하고, 그렇게 활달한 광암 이벽 성조께서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앓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문중회의에서 대표를 보내니 그 대표가 만나서 물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 표시를 하도록 하라고 통고 해오는 동시에 대표자들을 보냈다.

이부만공은 다시 당황하기 시작하였고,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얽혀나가는 가운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최후의 방법으로 아들 이벽 성조를 사랑방에 가두고 출입문에 못을 치고 집 밖에는 새끼줄로 금줄을 매고 종들을 시켜 지키게 하고 아들 이벽이 천주학을 하다가 천벌을 받아 열병(속칭 염병)에 걸려서 다 죽어가니, 가족들도 전염될까 두려워 시급히 어디로라도 옮기도록 주선을 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200년 전 한국사회에서 염병이라고 하면 그것은 하늘이 내리는 병이고, 여기에 걸려서 살아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혀 약이 없었고, 심한 경우, 이웃과 마을이 전부 몰사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한국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저주는 염병에 걸리는 말이었다.

이벽 성조께서 천학운동을 하면서, 부모제사를 안 바쳐도 되며, 남녀와 양반상놈이 함께해도 된다고 가르치더니 천벌을 받아 염병에 걸렸다고 하자, 문중회의 대표자들과 문중에서는 “더 이상 증거가 필요 없다. 염병에 걸렸다는 것이 최대의 증명이고 하늘이 바로 벌한 것이니 구태여 우리가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하게 되었고, 문중회의는 자동적으로 해산하게 되었다. 그때에, 천주교 신자들이 이벽 성조를 뵈러 집을 찾아와도 면회는 불가능하였으니, 아버지 이부만공은 종들을 시켜서 출입을 금지시켰다.

※ 자료출처 : 천진암성지 홈페이지(chonjin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