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정영식 신부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75) 형성적 기투에 대하여 ①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입력일 2009-08-25 수정일 2009-08-25 발행일 2009-08-30 제 266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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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영적 성장 기회로 삼아라
살면서 겪는 다양한 위기는 하느님께로 나아갈 기회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꿈을 안고 있었다. 신학생 생활은 천상적인 은총의 생활이 되리라 기대했다. 사제를 꿈꾸던 나에게 있어서 신학교는 하느님을 따르는 청년들이 모여 기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가장 힘든 문제는 신학생들과의 관계였다. 나는 일반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갔고, 군 제대 후 신학교에 들어갔다. 당연히 같은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선배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이들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고학년 신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나를 불러 세우더니 어떤 일에 대한 복종을 강요했다. 그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나는 화를 내며 따졌다. 신학교 나이와 사회 생활의 나이가 다르지 않으며,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일에 대해 화를 내고 따지고 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대부분 세상에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그 날 이후 나는 신학교를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 달 동안 공부 시간 혹은 기도 시간, 심지어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일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신학교를 나갈 경우 실망하실 부모님과 나를 추천해준 신부님, 그동안 알고 지낸 모든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결국 신학교 신부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고, 신부님은 집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오라고 했다.

신학교를 나온 나는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집 근처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뱅뱅 돌기만 했다. 부모님을 뵐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몸이 후들 거렸다.

그러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가 어머니께 신학교 생활이 힘들어 사제의 길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라, 그 분은 십자가의 길에서 세 번 쓰러지셨다. 너도 앞으로 세 번 이상 넘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신앙을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집을 나와 신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느님께 기투하는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던지는 삶이 무엇인지 묵상했다.

기투(棄投)란 말 그대로 내어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 단어로는 ‘버리다’‘단념하다’‘포기하다’‘내맡기다’의 의미를 지닌 ‘abandon’이다. 이 기투는 신앙적 차원에서 볼 때, ‘나 자신을 포기하고 하느님 뜻에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내 뜻을 포기하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모든 일에 ‘예!’하고 응답할 수 있다.

내가 기투의 문제에 대해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나 자신의 체험 때문이다. 신학교에서의 경험만이 아니다. 사제가 된 이후 신학교 영성 지도를 담당할 때, 그리고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할 때 등 모든 어려운 상황마다 기투는 나에게 큰 화두로 다가왔다. 하느님을 향한 기투는 나의 삶 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위기감을 느낀다. 하지만 위기에 매몰되면 더 큰 성장에로 나아가지 못한다. 위기도 어쩌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위기도 다르게 보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나를 새로운 차원으로 초월시켜 주실, 즉 재형성 나아가 초형성 시켜 주시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그런 위기를 ‘초월 위기’(Transcendence Crisis)라고 부른다. 위기를 그저 위기로만 받아들이면 이는 나 자신 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초월의 기회를 잃게 된다. 하느님은 나에게 형성될 수 있는 초월의 씨앗을 뿌려주셨는데, 위기를 잘못 해석하면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하게 된다.이렇게 되면 돈과 명예, 오만한 욕심 등에 매몰되는 삶, 즉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는 삶(deperciative Abandonment)을 살게 된다. 하지만 위기를 초월의 기회로 받아들이면, 하느님의 뜻을 ‘인정하는 기투’(Appreciative Abandonment)의 삶을 살게 된다. 인정하는 기투의 삶이란 나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 뜻에 내어 던지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진정한 영적 성장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