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카리스마를 찾아서-4. 한국외방선교회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8-06-22 수정일 2008-06-22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 가겠습니다

일요일 오후 5시30분. 다른 사람들은 바다와 강, 산으로 떠났는데 여기 이 청년들은 모여 기도를 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새 차분히 가라 앉았다. 선선한 기운이 기도방 안으로 휘어돈다. 세상이 적막에 잠긴 듯 조용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세상을 향해 시원히 가슴 열어젖힌 청년들이 젊음과 패기, 열정, 의지를 모두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한다. 세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청년들 얼굴 하나하나에서 행복이 엿보인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167 한국외방선교회(총장 김명동 신부) 신학원. 외방선교를 꿈꾸는 30여 명의 신학생들이 해외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한국외방선교회 사제가 되려면 일반 교구 사제의 그 기간보다 2년이 더 소요된다. 신학교 2학년 수료한 뒤 군복무를 바치면, 교구 신학생과 달리 별도의 수련 1년 기간(영성의 해)을 거쳐야 한다. 3개월간 해외 선교현장에 나가 직접 선교 체험하는 것도 이 시기다. 수련기간 후 신학교 생활을 계속한 신학생들은 대학원 2년 마치고 또 해외선교실습(OTP) 1년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현재는 캄보디아와 중국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총 7명이 선교 실습과정을 거치고 있다. 해외선교를 해야 하는 만큼 영어는 기본이다. 그래서 신학원에는 영어 강사가 상주하고 있다. 하지만 영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선교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중국어, 캄보디아어 등 현지어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제가 되면, 이제 본격적인 선교사의 삶이 시작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사제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 현재 한국외방선교회는 대만,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6개국에 50여 명의 사제들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철저히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사목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현지인들의 삶에 동화되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인, 하느님 사랑 듬뿍받은 아시아 맏이 교회가 이제는 이렇게 그 자녀들을 아시아 및 세계 곳곳에 파견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외방선교의 결실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6월 3일 선종한 고 최기선 주교가 첫 씨앗 뿌렸고, 전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와 현 정진석 추기경의 노력으로 한국외방선교회가 해외선교 전문 단체로 주교회의의 공식 인준을 받았다.

선교회 영성(카리스마)은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 영성과 바오로 사도의 선교 영성, 순교자 영성 등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여기에 한국외방선교회의 ‘플러스’ 고유 영성은 ‘감사’와 ‘보은’이다. 창설자 최재선 주교는 생존 당시 신학교 신입생들을 위한 격려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고, 가톨릭교회 보편성의 근본이고 특히 오늘날의 시대가 뒷받침하고 세계교회가 절실히 희망하는 바이다. 한국교회가 과거 약 200년 동안 수없이 받은 은혜에 답례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다”(1989년 3월).

최주교는 또 “다른 국가에서 사제가 부족하든 말든, 그들의 양성비야 있든 없든,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는 과거에 받은 무수한 은혜를 너무도 모르는 배신행위”(최재선 주교 회고록 27쪽)라고 까지 말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외방선교회 신학생들과 사제들은 늘 ‘감사’의 삶을 살아간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한국교회에 도움 준 다른 많은 교회들에게 감사하고, 외방선교 발전을 위해 함께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캄보디아 오지에서,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서 그들은 그렇게 은혜 갚기에 나서고 있다.

“말과 언어 풍습이 생소한 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선교사들이 ‘어려움이 곧 은총’임을 체험합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지내고 나면 선교사는 한층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련장 양금주 신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풍습이 다른 곳에서 하느님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며 기도를 부탁했다.

벌써 창립 33년이다. 조금은 지치고, 힘들 법도 하지만 한국외방선교회의 열정은 아직도 초창기 그대로의 모습이다. 6월 8일 파리 노틀담 대성당에서 열린 파리외방전교회 350주년 미사에 참석한 양금주 수련장 신부는 아시아 각국 성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 성직자가 필요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신학원을 나와 세상으로 향했다. 산속 맑은 공기에 행복해 했던 몸이 이내 탁한 공기로 불편해 한다. 마음도 함께 답답해진다. 도로는 서해안으로 나들이 다녀오는 차들로 가득했다. 평소면 10분 거리인 수원역까지 1시간 넘게 걸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청년들의 기도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성소 및 입회, 후원 문의 031-227-8490, 02-3673-2525, 010-4555-7526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