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마르코 복음서(44)

입력일 2006-11-19 수정일 200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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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토사구팽적 행위 보며 지금의 우리 신앙 성찰해봐야

5. 체포되심 (14, 43~52)

유다가 최고의회 의원들이 보낸 하인들을 이끌고 예수님께 옴 (43절)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 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42절)는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예수님께 다가온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온다. (43절)

그들은 유다의 최고법정을 구성하는 세 정당의 대표자들이 보낸 하수인이다. 음모는 항상 밤에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나 보다. 역설적으로 무기를 들고 있는 이들의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유다의 입맞춤 (44~46절)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 (44절)

배신의 신호는 입맞춤이다. 존경과 애정의 표시인 입맞춤이 불길한 죽음의 서곡이 되었다. 유다가 왜 제자직을 포기하고 적대자들과 한 패가 되었는지 복음서는 이유를 들려주지 않는다.

스승이 정치적 메시아로서 로마 제국을 향한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에 힘있게 앞장서기를 기대하다가 자신의 기대와 달라지니 스승을 배반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까?

신약성경 외경인 ‘유다복음서’에서는 유다가 배반한 것은 예수님을 돕기 위한 일이었다고 유다를 변호하지만, 유다의 행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처럼 얄팍한 우리네 실상을 보여주는 속임수가 아니겠는가?

대제관의 종을 쳐서 귓바퀴를 잘라 버림 (47절)

체포의 상황이 얼마나 살벌하였는지 우연한 한 사건이 분위기를 알려준다. 누군가가(‘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고 한다.

마태오와 루카는 칼을 빼든 이가 ‘예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하고(마태 26, 51; 루카 22, 50) 요한은 시몬 베드로가 대제관의 종 말코스의 귀를 잘랐다고 하는데(요한 18, 10) 어찌 되었든 예수님이 체포되는 혼란스런 와중에 여러 가지 폭행사건이 일어 났음직 하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앞에서 인간은 그저 공격의 목표물일 뿐이다.

예수님의 긴 항변 (48~49절)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48~49절)

무장한 강도라도 잡을 듯이(예레 7, 11 참고) 무기를 들고 예수님을 체포하러(예레 36, 26; 37, 13) 다가오는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긴 항변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악인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 예레미야와 이사야, 에제키엘 등의 예언자를 떠오르게 한다.

악인들은 자신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불경한 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지혜 2, 14)고 생각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악이 판치도록 그대로 두실 것인가?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붙잡히게 된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제자들의 도주 (50~52절)

이제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난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38절)는 당부의 말씀은 아랑곳없이 제자들 모두가 화급하게 도주를 하고 말았다.

마르코 복음에는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고 전한다. 이 청년이 누구였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복음사가 자신이거나 익명의 제자였을 법한데, 신앙심 부족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이처럼 마르코 복음사가는 절제된 감정으로 예수님의 체포 상황을 생생히 보도해 준다. 공포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비열한 음모와 강제 구금, 소란한 와중에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피해 사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 상황, 그 가운데 비겁하게 도주하는 제자들….

예수님의 체포 사건은 박해 상황에 놓여 있던 마르코 공동체는 물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어떤 기준으로 움직여지는지 다시 한번 신앙의 안목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