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45】니사의 그레고리우스 ‘편지’에서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06-03-05 수정일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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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우스는 지나치게 성지순례를 강조하는 세태를 지양했다.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부활하셨던 장소에서 기도하지 않더라도, 우리 영혼에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예수무덤성당.
“기도의 장소를 바꾼다고 해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기도의 장소를 바꾼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서 기도하든지 간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혼 안에 머무르시고 거니실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해 드린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내적 자아가 천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비록 골고타 언덕이나 올리브 동산이나 주님께서 부활하셨던 바로 그 장소에 우리가 서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맞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단 한 번도 주님을 고백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편지’ 2

“하느님 위한 ‘마음의 성전’ 지어야”

[해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한 이 말은 최후심판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왔느냐 하고 물으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성지순례가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성지순례를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성지순례 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성지순례가 오히려 도덕적으로 위험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한 신자들은 순수한 신앙심에 가득 차서 성지순례를 간다. 그레고리우스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때에도 성지순례에 대한 부작용이 많았나 보다.

오늘날에 비해서, 그때에는 성지순례를 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고, 또 돈 많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지순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마치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것이 구원의 보증인 양 착각하거나 성지순례를 신앙심의 척도로 간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성지순례를 가서 기도해야만 주님께서 더 잘 들어주신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는 이 같은 세태를 비판하면서, 자신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성지순례가 자신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레고리우스는 성지순례를 가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자신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거닐어보았지만, 자신의 신앙이 성지순례를 가기 전보다도 더 나아지거나 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셨던 그 장소, 주님께서 수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바로 그 장소에 가서 기도를 해야만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라고 그레고리우스는 말한다.

어디에서 기도하든지 간에 기도하는 이의 마음 자세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어디에서 기도를 하느냐 하는 기도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시고 거니실 수 있도록 우리 영혼 안에 안식처를 마련해드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레고리우스의 말을 기도의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나치게 성지순례를 강조하는 세태를 지양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레고리우스의 말을 성전건립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마음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름답고 커다란 성전을 짓는 데에만 온 정성을 다하고 우리 안에 ‘마음의 성전’을 짓는 데에는 소홀히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레고리우스의 가르침에 빗대어, 오늘날의 성지순례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성지순례가 아마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순교 장소나 순교자의 묘소를 참배하러 떠나는 성지순례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신자들은 마치 야유회를 가는 것처럼 약간 들뜬 기분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성지순례를 갈 때에는 미리 준비한 유인물과 기도서 등으로 마음의 준비도 하고 기도를 하면서 성지순례의 분위기와 마음가짐을 갖지만, 돌아올 때의 모습에서는 성지순례를 다녀온다는 분위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돌아올 때에는 대개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떠들면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버스마저 휘청거리는 것 같다. 그야말로 야유회를 다녀오는 분위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갈 때만큼은 성지순례를 가는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간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성지순례의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목숨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으러 간다면, 적어도 그 날 하루만큼은 기도와 묵상, 감사와 찬미 속에서 지내야 하지 않을까? 경건한 마음으로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