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본문]
본문1(요한 1서 4장 7∼21절)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임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란 이렇습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임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임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우리는 알고 있고 또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본문2] (요한 1서 강해 7장 8∼11절)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입을 다물어도 사랑으로 다물고
말을 해도 사랑으로 말하라.
나무라도 사랑으로 나무라고
용서해도 사랑으로 용서하라.
마음 속 깊이 사랑의 뿌리를 내릴지니
그 뿌리에선 오직 선만이 싹트리라.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1요한 4, 12).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육안으로 하느님을 찾아선 안되고 마음으로 찾아야지요. 우리가 저 해를 보고자 하면 육안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뵙고자 하면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심안을 닦아야 합니다. 그럼 심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뵐 것이니”(마태 5, 8)라고 하신 복음서의 말씀을 명심하세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8.16).
사랑이 무슨 모습을 하고 있던가요? 어떤 형상이던가요? 키는 얼마나 크던가요? 발 모양은? 손 모양은?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사랑엔 발이 있습니다. 발로 성당에 오잖아요. 사랑엔 손이 있습니다. 손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잖아요. 사랑엔 눈이 있습니다. 눈으로 가련한 사람을 살피잖아요.…
형제 여러분, 진정 사랑을 지키고자 하시거든 무엇보다도 사랑이 따분하다거나 할 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저 유순함으로, 아니 유순함 보다는 무기력과 무관심으로 사랑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해선 결코 사랑을 지킬 수 없습니다. 종을 때리지 않는다고 해서 종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아들을 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들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이웃을 꾸짖지 않는다고 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이는 사랑이 아니고 무기력입니다. 사랑은 정열을 쏟아 교정하고 수정합니다. 품행이 선하면 기뻐하고 품행이 악하면 교정하고 수정해야지요. 사람의 잘못을 사랑하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세요.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하셨으나 잘못은 사람이 저질렀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사랑하고 사람이 저지른 것은 사랑하지 마세요.
[해설]
1) 요한 1서 4장 풀이
요한복음서 후반부에 예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애제자가 나온다. 애제자의 영향을 받은 교우들이 서기 100년경 에페소 주변 아세아 지방에서 요한 1. 2. 3서를 썼으리라는 게 오늘날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그 중에서 요한 1서 4장은 백미인데, 그 짜임새는 간단명료하다.
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8.16절).
②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강생 9절), 하느님은 외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는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다(대속죄 죽음 10절). 예수는 강생과 죽음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준 하느님 사랑의 화신이시다.
③ 사랑이신 하느님을 증득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형제들을 사랑하기 마련이다(7∼8.11∼12절).
④ 사랑이신 하느님과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서로 내주(內住 12.16절)한다.
하느님에 대한 정의도 설명도 많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8.16절)라는 말씀보다 더 좋은 정의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서로 내주한다는 말씀도(12.16절) 참 좋다. 그러니 사랑에 젖어야 이승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저승에서 임의 품에 안길 것이다. 비정을 일삼고서 어찌 사랑이신 하느님을 뵐 수 있으랴. 불가의 다정불심(多情佛心)에 빗대어 나는 다정신심(多情信心)이란 신조어를 빚고 싶다.
2) 요한1서 강해 7장 풀이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히포(지금의 알제리 공화국 지중해변 안나바 항구)에서 주교로 재직하면서 매일 강론했다. 그 강론 내용이 진솔한 데다 그 표현 또한 교우들 눈높이에 딱 맞추었던 까닭에, 청중은 귀를 쫑긋 세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15년경 환갑 때 10차례에 걸쳐 요한1서를 강해했는데, 여기 소개하는 것은 제7차 강해 일부이다. 이 강해 때 교우들은 기립해서 환호, 칭송, 열광했다. 그만큼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강해였던 것이다. 말씀의 핵심을 간추려 본다.
사랑이 무형무상이듯이 하느님도 무형무상이시다. 육안으로는 무형무상 하느님을 뵐 수 없고 오직 심안으로만 감지할 수 있다. 심안 대신 신령한 눈, 곧 영안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내 마음 속 깊디깊은 곳보다 더 깊이 계시는 임을 만나자면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게 학덕을 겸비한 주교의 생각이다.
아울러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웃 사랑을 결코 유순한 덕목으로 보지 않는다. 참 사랑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고 활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나무라고 꾸짖고 교정하고 수정하는 등 정열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행동하는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열쇠라는 것이다. 학덕을 겸비한 성인 주교의 축일은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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