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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살리자] (5) 가정붕괴 큰 원인 ‘가정폭력’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3-04-27 수정일 2003-04-27 발행일 2003-04-27 제 234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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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부당성 홍보…개선책 강구해야
사목자 의식개선.신자교육 필요
상담소 연계 등 인프라 구축돼야
『또 시작했다. 오늘은 골프채를 휘두르며 고함을 지른다. 무조건 도망쳤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긴 죽기보다 싫었지만 아이들 걱정이 더 크다』

『아들은 날마다 「빨리 죽지 않고 사람 고생시킨다」고 화를 냅니다. 며느리는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손주들도 못 안게 하고, 거실에도 나오지 못하게 해요』

『내 아이 내가 직접 교육시키는데 왜 참견입니까? 애들은 맞으며 커요』

기가 막힌다. 아내를 패고, 자식을 패고, 부모를 패고. 구박, 단순 폭력을 넘어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가정 내 폭력에 있어서 신자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신자라는 이유로 폭력의 경우를 더욱 쉬쉬하고 악순환을 반복시키는 경우가 다수다. 가해자를 고발하면 그 피해자는 더 큰 죄인이 되는 사회 분위기다. 신자이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 더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십자가」가 되는 것이 가정 내 폭력 피해다. 「가정을 살리자」 그 다섯 번째 순서로 가정폭력의 실태와 개선방안 등에 관해 짚어본다.

늘어만 가는 가정폭력

가정폭력으로 인한 한가정의 붕괴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그 정도와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발표에 따르면 가정폭력사범 검거건수가 한해 1만5000여건을 넘어섰다. 상담소 등을 통해 표면화된 가정폭력 경우만도 한해 수만건에 이른다. 가정폭력의 85%이상은 아내폭력이며 나머지는 남편학대, 노인학대, 아동학대 순으로 집계되고 있다.

여성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며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노인학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3명 중 1명꼴로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학대 행위도 결손가정 뿐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공적 차원의 보호기능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의식전환 급선무

폭력의 원인으로는 가정불화, 음주, 외도, 경제적 빈곤 등 다양한 외면적 이유가 나타난다. 그러나 외면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폭력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집은 다른 집 만큼은 심하지 않다』 『가족이니까…』 『자식들 때문에…』 『화가 나면 때릴 수도 있다』 『이혼하면 성당엔 나갈 수 없다』 등의 사고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심각하지 않다고 받아들이며 법적 처벌이나 정신적 치료를 받지 않으면 쉽게 고치지 못한다. 매맞는 여성들도 낮은 자존감, 두려움, 무기력, 종교적인 이유, 막연한 기대 등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힘없는 노인들과 아이들은 그저 당하고 참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분위기가 폭력 근절의 큰 걸림돌이다. 『맞을 짓을 했겠지』 『남의 부부 일인데…』 『아이들 교육은 부모 권한이니까…』라며 관심갖기를 거부한다. 경찰조차 신고를 해도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 안에서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자라는 이유로 폭력을 숨긴다. 성직?수도자, 혹은 평신도 지도층에 고민을 털어놓아도 인내와 희생을 우선시함으로써 교회가 가정폭력을 방임하고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경우까지 있다는 지적이다. 매맞는 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라도 할라치면 교회의 시선은 그 원인과 당위성에 상관없이 냉담하다.

매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의 한 상담원은 『전화 문의를 하면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인지를 묻고 교회가 운영하는 곳이라면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가톨릭여성의 전화 상담소 소장 이영자 수녀는 『당장 죽을 듯이 매맞는 아내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만 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남편이 술을 적게 먹거나, 분노를 다스리도록 조절하게 하거나 가족과 대화하는 등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가정 내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외적 조건을 다스리는 올바른 가치관과 심성이 중요하다. 실제 가해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분노를 다스리는 등 행동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60% 이상이 폭력을 근절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법원의 지시로 대전가톨릭폭력상담소에서 상담위탁처분을 받은 J씨는 5개월간에 걸친 상담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상습적인 폭력, 폭언, 낭비벽 등으로 시달린 아내는 남편이 아무리 반성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J씨는 이와 별개로 꾸준한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 상담 종료 후에도 아내의 묵은 감정은 쉽게 씻겨지지 않아 별거는 계속되었지만 꾸준히 변화된 모습에 몇달 후 아내의 용서로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등은 강제성을 띠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려워 적극적인 법적 개입이 필수다. 따라서 먼저 폭력이 발발하지 않도록 조치돼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인구 1000명 미만인 마을에 상담원이 8명, 매맞는 여성 및 아동을 위한 쉼터도 한개소 설치돼 있다. 특히 이웃끼리의 전화신고체제가 확실해 사건 발생 즉시 신고가 들어오고 상담원은 국가권한으로 적극 가정문제에 개입해 사태가 심각해지거나 되풀이되기 전에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

교회의 역할

교회 내에서는 무엇보다 본당 사목자들의 적극적인 의식개선과 신자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복음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삶 만을 강조하는 것은 냉담을 가중시키는 큰 이유다. 특강이나 피정 등을 통해 가정문제 전문가를 초빙, 폭력의 부당함과 개선방안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회 내 인력개발, 자원봉사자 양성, 전문심리상담소 등과 연계하는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 교회 산하 한 보호시설은 전화 상담을 비롯해 평균 40여명의 상주 보호자를 돕는 인력이 단 한 명의 상담원으로 운영되는 등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자원봉사에 관한 인식도 낮아 일반 신자들은 교육 후에도 상담 등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교구 단위로 상담 및 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상담소와 쉼터를 지원, 전문 심리상담소 등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일반적인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성폭력 관련 기관을 제외하고 가정폭력 상담소 158개소, 가정폭력 피해자보호시설이 31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교회는 이중 30% 이상을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여성폭력 위주이고, 노인과 아동을 위한 전문기관은 수도회가 운영하는 1개소 뿐이다.

대구대교구 가정사목담당 김용민 신부는 『가정의 중심인 부부의 의식화가 특히 중요하다』며 『희망과 이상만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지 않도록 현실적인 가정생활을 고려할 수 있는 가나강좌 내용을 비롯해 예비부부 프로그램, 부부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역 소공동체별로 실시,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인식과 행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거짓 화목과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가려진 가정폭력문제는 곪아드는 빛 좋은 개살구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창원 여성의 집 조현순 관장

“인내와 희생만으론 폭력문제 근절 안돼”

조현순 관
『피해자들이 성직자 등과 상담을 하면 대다수 더 참고 희생하고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옵니다.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들은 서서히 죽어갑니다』

10여년째 매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이끌고 있는 창원 여성의 집 조현순 관장은 폭력을 숨기고 인내와 희생을 내세우는 현실이 가정 내 폭력의 근절을 막는 큰 장애라고 지적했다. 특히 혼인무효사유가 충분하고 가해자의 계도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이를 고발하거나 이혼한 피해자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은 교회 안에서 더 강하다고. 조관장은 또 일반 신자들도 남에게는 가해자를 고발하고 피해자는 자립해야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떠들면서 정작 자신의 경우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폭력을 숨기고 사는 모순된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잘못된 사고로 인해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 매맞는 이들의 근본적인 의식 개선을 위해 사목자의 의식화와 평신도 전문가 양성이 중요합니다』

몇몇 성직.수도자의 힘으로는 여력이 부족, 평신도 상담 전문가와 자원봉사자의 수를 늘여야 신자생활에 더욱 근접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설 등에서 활동할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자원봉사나 물질적 후원에 관한 인식도 낮다고. 조관장은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교회 내 시설확충이나 신자교육과 아울러 교회 밖 전문시설과의 연계하는 포괄적인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관장은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1366」 상담 전화의 경우도 무조건 이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상담부터 가해자처벌 및 교육, 자녀문제, 취업알선 등 다각적인 정보와 지원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매맞을 짓을 했다는 것을 누가 판단합니까? 왜 이웃이 매 맞는 것을 보고만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먼저 나서 폭력을 거부할 힘을 키우고 그 대안을 만들어가는데 힘을 모아야합니다』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앞장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사람들은 우리 개개인임을 조관장은 강조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