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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 가정을 살리자] (3) 낙태 천국, 한국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3-02-09 수정일 2003-02-09 발행일 2003-02-09 제 233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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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낙태는 자동 파문’생명수호 노력 시급
10~40대 이유도 다양, 매년 150만건
애매모호한 모자보건법 남용 부추켜
『저기요,낙태하는데 얼마정도 들까요. 제발 답변해 주세요. 참고로 저는 10대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어요. 아직 2주정도 인데 학생이어서 아기를 낳지 못해요. 부모님께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벌써 딸이 둘입니다. 임신을 다시 했는데 또 딸인 것 같다고 하네요. 고민입니다』.

한 낙태반대 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사연들에서는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돼서, 혼전 임신이어서, 남자아이를 낳으려고, 터울을 조절하느라 등등 10대부터 30~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낙태에 관해 문의하려는 여성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다. 매년 평균 150여만건으로 낙태 건수 세계 제1?2위를 다투며 낙태 발생국, 낙태 공화국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 사회 낙태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

세계적으로 낙태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 태아 수는 연간 약 5500만명에서 7000만명으로 추정. 여기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은 하루 평균 5600여명 , 시간당 230여명 태아가 뱃속에서 살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해 출생 인구 수 60여만 건의 1.5배 이상에 해당되는 수이다.

낙태는 피임도구?

2001년 가족보건 복지협의회 조사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낙태 경험률은 약 39%. 세명중 한명이 낙태로 인한 아픔을 겪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전체 낙태 시술 30%를 차지하는 미혼 여성 사례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상상이상으로 불어난다.

더욱 심각한 현실은 전체 낙태 당사자들 중에서 60% 정도가 10~20대 초반 청소년들이라는 것이다. 지난 94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해 150만건 임신 중절 중 30%에 해당하는 50만건이 10대 임신부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서대 김혜원 교수가 남녀 고교생 2000여명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여학생 4명중 3명이 「임신 해결방안을 중절 수술」이라고 응답한 사례에서는 임신중절을 피임방법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내 신자들의 낙태에 대한 인식과 시술 경험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가 교구내 70개 본당 신자 1772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10명중 4명이 낙태를 경험했으며 2번 이상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 60% 이상이었다. 입교전과 입교후 낙태 비율도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참고로 91년 수원교구에서 23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영세후 낙태한 신자가 41.9%에 달했다.

또 92년의 한국 리서치 사회조사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무작위 추출 조사 대상자(500명)중 낙태 경험자는 49%였는데 이중 가톨릭 신자가 60%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같은 「낙태 불감증」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현대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을 꼽는다. 가톨릭대 이동익 신부는 『현대 사회가 다원화,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기존 가치 질서는 무너지고 인간 역시 물질화 도구화되는 가운데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다분히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사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변질돼 버렸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의식을 실종해 가고 있다』고 덧붙인 이신부는 『그 과정에서 인간의 성 역시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쾌락의 도구로 전락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외에 「낙태 행위에 대한 무지함」「남아선호사상」「모자보건법」「의료정책」등도 낙태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직감으로는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낙태가 어떤 성격의 행위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불법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 산부인과에서 성별을 알려주고 있는 상황에서 여아로 판명될 경우 낙태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73년 공표된 모자보건법 14, 15조에 드러난 낙태허용기준이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전면적으로 방임할 수 있는 독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내 관계자들은 「산모의 건강이 위태로운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는 규정이 모호해 의사들이 낙태를 남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의견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 법안의 시행으로 비록 형법에는 낙태죄를 명시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낙태가 허용됐다. 산부인과의 낮은 의료수가도 문제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많은 병원들이 낙태 시술을 하지 않고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낙태를 조장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천주교회에서 태아생명보호 인식을 사회에 주지시키기 위해 보급한 「태아의 발」배지.

합병증 등 폐해 심각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2000 전국 출산력 조사」 결과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낙태에 대해 무심한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조사에서는 낙태 경험자의 59.4%가 「원하지 않는 임신」때문에 수술대에 올랐다고 답했는데 이는 낙태가 하나의 피임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사례다.

또 첫 번째 임신일 때 낙태한 가장 큰 이유는 「혼전 임신」(42.3%) 그리고 「경제적 이유」(12.7%) 였고 두 번째 임신은 「터울 조절」(42.3%), 세 번째 임신 경우는 「자녀를 더 이상 원치 않았기 때문」(70.6%)에 낙태했다고 답했다.

특히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10대들의 낙태 증가는 청소년층들의 성에 대한 인식은 급속히 개방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 할만한 교육이 뒤따르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피임 출산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무분별하게 임신을 하게 되고 낙태는 이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10대 임신의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주위에 알릴 수 없고 피임에 무지해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보내다 임신말기에야 수술을 받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했다. 이렇게 임신 말기에 낙태를 하게되면 임신 초기 낙태 보다 산모 건강에 미치는 충격이 커져서 불임이나 다른 산부인과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인공 임신중절이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주제 발표를 한 한양대 박문일 교수는 『특히 결혼 전 낙태한 경우 결혼 후 까지 영향을 미쳐서 임신을 하더라도 습관성 자연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합병증도 생기는 등 여성 건강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고 지적한바 있다.

미혼 여성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 수술을 경험한 이들이 겪는 부작용과 후유증은 「자궁경부 무력증」「자궁 천공」「골반 염증성 질환」등이며 이외에 「자궁외 임신」 확률을 높이고 또한 적지 않은 「정서적 후유증」을 남긴다.

자궁 경부 무력증은 무리하게 자궁 문을 열게 됨으로써 중간적 자궁 경부에 열상 출혈이 오고 그로 인해 자궁 경부가 무력해져 결국 다음 임신 때는 조산, 유산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자궁 천공은 낙태 시술 시 사용하는 자궁 소식자가 너무 깊게 삽입되거나, 태아의 산물을 긁어낼 때 쓰는 큐렛으로 자궁이 뚫어지는 것이다. 낙태한 여성의 10.9%가 겪고 있다는 골반 염증성 질환은 재발 가능성이 25%나 된다. 이는 낙태 때문에 자궁 나팔관 염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불임 혹은 자궁외 임신을 초래한다.

낙태한 여성들은 무엇보다 정서적 상처가 크다. 일부 여성들은 상실감을 느끼며 슬픔, 공허감, 가장된 행복감을 체험하며 성적 장애 혹은 관계 장애 분노감 등의 정서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임신에 대한 두려움 등 가족관계 면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한 낙태반대 캠페인에 부모를 따라 참가한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혐오되는 죄악

교회법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낙태를 하면 일반 살인죄와는 달리 자동적으로 파문 처벌을 받는다(교회법 제1398조). 낙태는 더욱 혐오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파문 처벌은 그 사면이 사도좌에 유보돼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고해사제는 고해 성사중 낙태죄와 그에 따른 파문 처벌을 함께 사면해 줄 수 있다. 사목자들은 이 경우 『다만 낙태죄로 인한 잠벌까지 용서받기 위해서는 상응한 보속과 선행의 보속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낙태 예방은 무엇보다 생명의 존엄성을 확고하게 일깨우는 교육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생명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방책으로서의 법개정도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초중고등학생들의 각 단계에 맞는 넓은 의미의 성교육 강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성윤리 확립 주체는 신자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의 한 교수는 『임신 출산등 생식 보건 과정에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밝히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어린시절에 남성의 책임과 역할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낙태 예방과 생명문화 건설에 있어 특히 생명의 종교인 가톨릭의 역할은 더욱 중대하다 할 것이다. 신자들이 성윤리를 확립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함이 어느 때 보다 요청되고 있다.

『낙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편이었고 이미 낙태한 신자들의 양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적지 않다』고 사목자들의 역할을 지적한 한 교구장은 『사목자가 이 문제에 침묵한다면 생명 경시 풍조는 더욱 더 신자들의 양심을 점령해 나갈것』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사목자들은 낙태 예방과 이미 낙태한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