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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주일 특집] 탐방 / 쪽방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집’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2-12-15 수정일 2002-12-15 발행일 2002-12-15 제 232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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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우니 75 나이에 새 세상이 보여”
한글학교 열어 못배운 한 풀어주고
반찬 옷가지 챙겨주며 ‘함께 하는 삶’
쪽방상담센터 「함께 하는 집」이 서울 동자동에 「디딤돌 한글학교」를 연 후 반년을 채 넘기기도 전에 한글학교는 쪽방거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랑방이 되고 있다. 한글 익히기에 여념없는 할머니의 모습이 진지하기만 하다.
『순남 할머니! 컨닝하지 마세요』

『컨닝은 무슨…. 다른 것 보는데』

겨울밤이 깊어 가는 거리와 문 한짝을 사이에 둔 「디딤돌 한글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배움의 열기가 뜨겁다. 학생들은 모두 예순을 넘은 할머니들, 제일 젊은(?) 노순남 할머니가 66살일 뿐 나머지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일흔을 넘긴 나이들이다.

지난 4월 쪽방상담센터 「함께 하는 집」(소장=김길순, 지도=최부식 신부)이 서울 동자동에 「디딤돌 한글학교」를 연 후 반년을 채 넘기기도 전에 한글학교는 쪽방거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랑방이 되고 있다. 서너명으로 시작했던 한글학교는 그 새 20여명으로 불어나 4개 과정을 둘 정도로 발전했다.

『일례 할머니 오늘은 잘 쓰시네요』

칭찬하는 소리가 몇 차례 오가고 나면 한 획 한 획 한글을 따라 쓰는 노인들의 손놀림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돋보기를 쓴 할머니들은 교사의 칭찬에 수시로 표정이 변한다. 올해 여든살인 권금분 할머니는 막내딸뻘 되는 선생님 김문희(율리에타.53.서울 한강본당)씨의 칭찬에 쑥스런 웃음을 지우지 못한다. 다음 시간에는 시험을 보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할머니들의 얼굴에서는 순간 웃음이 걷히며 긴장하는 표정이 스친다.

전에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지난 2000년부터 쪽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김순애(75) 할머니는 『한 자 한 자 배우는 게 얼마나 좋은 지 모르겠다』며 『이제는 버스를 혼자 타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글자를 몰라 혼자 나다니는 것도 두려워 나들이가 무서웠던 노인들에게 한글학교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소장님, 계세요』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의 ㄱ씨가 「함께 하는 집」 문을 빠끔히 열고 김길순(아녜스.53) 소장을 찾는다. 『어서 와요. 반찬 때문에 오셨죠. 오늘은 순두부하고 멸치 조림이 있는데…』

김소장은 마치 ㄱ씨가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그에게 줄 반찬거리를 담는다. 새로 들어온 옷가지 몇 벌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는다.

『어제 또 술 마셨구나. 왜 저번에는 안 왔어요』

『성당에서 갖다 준 것도 있고, 아직 반찬이 남아서요』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마치 오랜 친척이 나누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반찬 나누는 일을 마친 김소장은 이내 며칠째 얼굴이 보이지 않는 ㅈ씨를 찾아 나선다. 환한 대낮인데도 속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건물 입구에 서자 각종 음식 냄새가 뒤섞인 형용하기 힘든 냄새만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통로를 서슴없이 헤치고 방문 앞에 선 김소장은 ㅈ씨를 부른다. 이내 열린 방에서는 주인이 김소장을 쑥스런 웃음으로 맞는다.

지난해 3월 서울역 맞은편 한평 남짓한 방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동자동 쪽방거리에 「함께 하는 집」이 문을 열 때만 하더라도 주민들에게 「함께 하는 집」은 그저 한 차례 지나치는 소나기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어렵사리 봉사자가 찾아가도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욕을 듣는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김소장과 「함께 하는 집」은 쪽방거리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고 있다.

『우리 소장님, 정말 대단한 분이예요』

2년간 노숙을 하며 영등포역과 서울역 등지를 전전하다 올 초 「함께 하는 집」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는 정태순(가명.53)씨는 김소장이 자리를 잠시 비우자 그에 대한 자랑을 시작한다.

15년 전 허리를 다친 후 변변한 벌이가 없어 줄곧 남의 신세를 져야 했던 정씨는 얼마 전 김소장의 노력으로 생활보장수급자 자격을 얻어 끔찍했던 노숙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함께 하는 집」은 4, 50년 동안 주민등록도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줘 새 삶을 찾아주는가 하면 틀니와 돋보기가 없어 반 장애인으로 지내야 했던 이들에게 원하기만 하면 들어주는 기적의 장이자 삶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다.

이런 모습에 마음이 열린 주민들 가운데서는 「함께 하는 집」 일을 거들고 나서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이들만 40여명이 넘을 정도다.

매일 아침이면 「함께 하는 집」으로 출근하다시피 한다는 김석환(76) 할아버지는 이제 쪽방 사람들 가운데서 사랑방 할아버지로 통한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이들에게 밑반찬 배달하는 일부터 크고 작은 소식을 전하는 일, 청소 등 눈에 띄는 일이라면 모두 자신의 일처럼 맡고 나선다.

『우리 소장님 때문에, 「함께 하는 집」 때문에 새로 난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저같은 사람도 쓰임새가 있다니 얼마나 기쁩니까』

700여 가구 900여명에 이르는 주민들의 마음을 이토록 빨리 열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기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쪽방거리에서 가장 분주한 곳이 되고만 「함께 하는 집」, 「우리 소장님」이 되고 만 김길순 소장. 쪽방 사람들이 바라는 수십 가지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었다.

※도움 주실 분=우리은행 454-028045-02-001(서춘배 신부), (02)756-3041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