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을 하다보면, 농담 삼아 각 성부의 특성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인터넷에서도 소위 합창 관련 사진들을 보면, 베이스들은 주로 멍하니 있다가 어떤 지적이 들어오면 “지금 우리가 어느 작품을 연습하고 있지요?”를 말하곤 합니다. 워낙 베이스 진행만 노래하다 보니 가끔은 조성만 바뀌었다 뿐이지 어쨌든 시작과 마침은 비슷하게 흘러가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베이스들의 외모나 성격이 대체로 시원시원하고 느긋하다는 점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이스는 예부터 음악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칸티오날 시대를 거치면서 호모포니 성가 합창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이때부터 특히 베이스가 어떤 곡의 화음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물론 아직 칸티오날 시대는 교회 선법의 시대이기도 했고, 우연에 기반한 화성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노래들을 들으면 무언가 옛날 노래인 것 같은데 오히려 현대곡인가 싶기도 할 겁니다. 화성이 우연적인 진행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려면, 바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의 베이스 진행 이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베이스가 음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바로크 시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옛 그리스 연극 음악을 연구하다가 모노디(Monodie)라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솔리스트가 혼자서 노래하는 동안 아무래도 반주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솔리스트가 부르는 곡의 선율과 그 곡의 기본 화음을 알려주는 베이스 음이 악보에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이 베이스 음을 바탕으로 해서 음 사이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넣어주는 반주를 ‘게네랄바스’(Generalbass), 다른 말로 ‘통주저음’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선율과 베이스 두 음들만 기록되어 있었지만, 즉흥연주를 하다 보니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여러 법칙이 나중에는 당연하지 않은 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법칙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서로 충돌하기도 하면서 연주자들이 조금 더 쉽게 연주하게 하기 위해서 친절하게도 베이스 음 위나 아래에다 숫자를 적어 넣게 됩니다. 이 숫자는 그 숫자가 함께 적힌 베이스 음에서부터 위로 계산해서 그 음들이 포함된 화음을 꼭 연주해야 한다는 지침이 됩니다. 그래서 게네랄바스를 ‘숫자 저음’이라고도 합니다. 게네랄바스라는 이름에서 독일말로 ‘바스’가 ‘베이스’를 의미하는데, 그만큼 게네랄바스에서의 베이스는 우리가 오늘날 화성을 생각할 때와는 조금 다르게 그 베이스 자체가 바로 기본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장 필립 라모는 어떤 화음이든 그 화음의 근음을 화음의 기본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게네랄바스에서는 ‘도미솔’이 5 3, ‘미솔도’가 6 3, ‘솔도미’가 6 4로 표시되는 데 반해 라모는 방금 말씀드린 세 화음의 자리가 어떻든 간에 ‘도’를 중심으로 여깁니다. 라모의 이론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이 근음에 바탕을 둔 베이스 진행을 말하는데, 화음 진행을 할 때 이 화음에서 다음 화음으로 넘어갈 때 3도, 5도, 7도의 화음으로 내려가면 아우텐틱(Authentisch) 진행이라고 하고, 반대로 3도, 5도, 7도의 화음으로 올라가면 플라갈(Plagal) 진행이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바로크 음악 이전의 칸티오날 성가는 이 아우텐틱과 플라갈이 무질서하게 섞여 사용되었다 해서 우연한 화성 진행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바로크 시대로 넘어오면 이 화성 진행은 아우텐틱 진행을 위주로 움직이게 되고, 바흐 코랄을 보면 몇 개의 법칙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우텐틱 진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화음 진행이 어떻든 결국 제일 먼저 살펴보는 게 베이스입니다. 베이스가 그 자체로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론 베이스가 다른 위치로 바꾸어 숨겨져 있는 근음이 중심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숨어있는 음을 베이스라고 여기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베이스를 담당하는 악기가 되었든 베이스를 부르는 성가대원이시든 처음 시작하는 음에서부터 마지막 마치는 음까지 음이 걸어가는 길을 동반하면서 묵묵히 지지대가 되어주시는 분들, 또 음악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의 다리와 발이 되어주시는 분들을 기억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