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春을 묻은 柳在夏씨 內外에 軍資材 援助 콘셀 校舍 7年만에 免하게 돼
【大田 閔榮在 記】 흔히들 들을 수 있는 이야기처럼 쉽지 않은 농촌개몽운동가의 한 사람인 요왕.유(柳在夏)씨의 7년간 고투가 햇빛을 볼 정도로 성장하면서 이웃의 화제가 되고 있다.
졸업생 3명이 장학생이 되고 학생수도 시골에서 3백명, 교사가 8명에 군원자재 3교실분을 얻게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유씨가 충남 함덕(唐津郡 合德面 玉琴里 88)에서 17명의 소년들과 천막집에서 합덕 삼민(三民) 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그를 도운 사람은 음악대학 출신인 부인 아가다.김(金春子)씨와 어머니 마리아.이(李今禮=안나회 회장)씨 성대교육과 주임교수 뿐이었다. 대전본당 주임 요셉.오기선 신부님이 최근에 책상·걸상을 기증한 이 학교는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과 한국교회 초창기의 알로이시오·공사가 이(李瑞源)씨 그리고 여중호걸로 추앙되는 골롬바.강(姜完淑) 여사가 난 유서 깊은 순교성지다. 성균관대학 교육학과 출신인 유씨 내외는 이번 졸업 「시즌」에 제3회 졸업생 50여 명을 다시 배출했다. 유씨가 23세의 젊음을 불사르며 두매산골서 보잘 것 없는 천막 학교를 시작하게 한 것은 오직 합덩본당 「상지의 좌 쁘레시디움」 단장인 어머니가 대를 이어 지켜온 전답(2백50만환=25만원)의 힘이다. 고등공민학교라는 하찮은 이름에도 개의치 않은 교장 교사 학생들은 5개 교실을 제손으로 짓고 1년 공납금 백미 여섯말로 형설의공을 쌓으며 겨눈다. 30세의 젊은 유재하 교장은 금년에는 2학급 120명을 모집했다. 그것도 지원자는 모집인원을 초과했다면서 『가을에 쌀 못내고 중퇴를 해야할 형편의 학생이 있을까 걱정이다』고 『조금만 더 있어도 다 잘 하겠다』는 유씨는 그동안 직원 2명을 예비시키고 졸업생 30여 명을 영세입교 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