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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에 만난 사람] 반평생을 2세 교육에, 오룡진 교수를 찾아

입력일 2020-11-06 14:35:58 수정일 2020-11-06 14:35:58 발행일 1971-09-12 제 78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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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의 자유화 조속한 해결로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길
훌륭한 제자 배출때마다 보람 느껴
【대구】지난 8월 28일 반생을 교단에 바쳐온 盧大 오룡전(요한 65) 교수가 후배교수들과 제자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정년퇴임했다.

오 교수는 이날 정든 학원을 떠나는 자리에서도 『앞으로도 계속 학문을 연구, 한국의 과학발달의 거름이 되겠다』고 학자다운 꿋꿋한 자세에 교수 학생 내빈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가 방문하던 날 오 교수는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기를 원한다면서 자택의 서재에서 학문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39년간의 긴세월을 교직에 바친 오 교수는 일본 히로시마 고동사범 수학과를 졸업, 49년 盧大사범대학 수학교수를 거쳐 60년 사범대학장 69년 盧大교육대학원장 등을 역임하고 동년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70년 정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로「동백장」을 받기도 한 오 교수는 현재 가톨릭 대구대교구 사제양성 후원회장직을 맡아 어려운 일을 뒷바라지 해오고 있다.

◇수학이 좋아서

학창시절에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잘했다면서 교과서 문제는 막히는 것이 없이 다 풀 수 있었다고 했다. 취미라기보다 수학이 좋아서 출발한 것이 수학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일제시 한인으로서는 발전에 한계점이 있는 불우한 시대에 있었던 오 교수는 영문학을 연구하고 싶었지만 일시적인 감정으로 생각하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교단에선 보람을 느끼며

오 교수는 많은 훌륭한 제자가 있다고 말하면서 특히 대구고보 제자중에 훌륭한 제자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했다. 훌륭한 제자가 날때마다 기쁨을 금치 못했으며 교단에서 가르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 정계요직에 제자들이 많다면서 기쁨을 금치 못했다.

◇수많은 슬픔을 백번 용서로 달래-

오 교수는 인재 양성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면서 몇몇 제자가 8ㆍ15 혼란기에 사족을 받아 정부 수립을 방해하며 오 교수 자신에게까지 위협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이런 배은망덕을 한 제자들이 참회하여 맡은바 책임을 수행할때 기쁨은 말할수 없다고 했다. 참회는 시간을 요한다면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인용했다.『일곱번 뿐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까지 하시오』

◇조속히 학원의 자유화 문제가 해결되길

정년퇴임을 앞두고 약 2개월간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오 교수는 미ㆍ중공간의 해빙무드를 비롯해서 세계 정세에 대해 약간 말하면서 특히 미국 대학가에 있어서의 자유보장의 예를 들면서 한국 대학가에도 언젠가는 와야할 것이 이제야 온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새 창조력을 발휘하길

오 교수는 교단을 떠나면서 후배교수들에게 학원내에서도 정치바람을 타는 풍조가 있다고 개탄하면서『바람은 언제나 불어오지만 한결같은 바람이 불어오지 않으니 기회만 타려 하지 말고 새 바람에 창조력을 발휘해 개척해 나가기를 당부』했다.

단란한 가정으로 부인 서태경(요안나ㆍ58)와 슬하에 장남 영수(미쉬건대학 물리학 교수 37) 차남 철수(도독 8년간 전기공학 연구 31) 3남 덕수(경대 수학교수 현 도미중) 4남(경대 생물과 4년 26) 막내 성수(경대 철학과 3년 20)군 등 다섯아들을 가진 학자 집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