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이탈리아 로마에 한국 최초로 유학 가 사제가 되기를 꿈꿨던 두 신학생이 있다. 대구대교구(당시 대구대목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다니던 이들은 제주 출신 전아오(아우구스티노) 신학생과 대구 비산본당 출신 송경정(안토니오) 신학생이다.
최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교황청 협조를 얻어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 신학원 자료실에서 전아오 신학생이 자필로 새겨 넣은 한글 기도문을 찾아냈다. 100년 전 기도문을 중심으로 젊은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베이비 전! 사랑스러운 천사
일제의 폭압적 식민 지배에 저항한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그해 11월 키 160㎝ 남짓한 신학생 전아오(건강 진단서 기준 19세)와 송경정(기록상 당시 18세)은 초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와 함께 이탈리아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랐다. 그들을 태운 배는 일본을 거쳐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을 경유해 약 2달 만에 목적지에 닿았다. 프랑스까지는 배로 이동했고 프랑스에서 로마까지는 기차를 이용했다.
이들은 대구대목구 성 유스티노신학교 첫 입학생으로 드망즈 주교의 관심 속에 우르바노 신학교(현재 우르바노대학교 신학원)로 유학을 떠나 1920년 1월 로마에 도착했다. 한국교회 첫 로마 유학생이자, 당시 베네딕토 15세 교황을 공식적으로 직접 알현한 최초의 한국인 신학생이었다.
우르바노대학교 신학원에서 발행하는 잡지 「알마 마테르」(Alma Mater)에서 전아오와 송경정에 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신학생 둘 다 확실히 초창기에 있는 교회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고, 외모상으로 그들의 건장한 체격은 장차 성직을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많은 결실들을 맺을 수 있는 보증과도 같아 보였다.”
이 부분은 당시 동료 신학생들이나 교수 신부 평판을 취재해 엮은 기사로, 특히 기사에는 전아오 신학생에 대한 애정이 많이 담겨 있다. 동료들은 항상 미소 짓는 얼굴에 쾌활하고 사랑스러우며 생기가 넘치는 그를 ‘베이비 전’이라고 부르곤 했다.
더불어 그는 ‘사도직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또 ‘한계를 모르는’ 애덕을 지니고 있었으며, 성덕(聖德)을 위해 늘 자신을 단련시키며 동료들의 모범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