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어릿광대 두 명이 8월 25일 오후 3시 부산수영의 월남보호소에 나타났다 사방에서 흩어져 놀고 있던 어린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우루루 어릿광대 주위를 에워싼다.
뒤이어 어른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릿광대들은 각양각생으로 얼굴을 분장하고 파란ㆍ노란색의 가발에 고깔까지 썼는데 넥타이는 무릎까지 내려온데다가 발에는 그야말로 항공모함 같은 신을 신었다.
나라 잃은 슬픔 탓인지 감정조차 없어보이던 월남인들은 가까이서 이 모습을 보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어릿광대들은 더덩실 춤추기 시작했다.
어릿광대들을 따라 수백 명의 월남인들도 그 주위에서 서로 어울려 춤추기 시작했다.
「엉터리 아저씨」로 분장한 진만복 신부(부산만덕본당주임 5ㆍ미국인ㆍ꼴롬바노회)와「해피(Happy)」로 분장한 윤철원 신학생(광주가톨릭대(大) 4년)이 펼쳐 보인 어릿광대 놀이의 한마당이 벌어진 것이다.
엉터리아저씨는 모든 행동을 엉터리로만, 해피는 항상 남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역을 맡았다.
어릿광대들은 크고 작은 공으로 온갖 묘기를 부리는 한편 「투우와 투우사」라는 단막극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구약의「노아의 방주」에 대한 공연 중 해피는 청천의 맑은 날부터 우직하게도 배를 만들기 시작하는 노아역을 맡았고 엉터리아저씨는 가늘게 오는 비속에는 작은 우산을 쓰다가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자 큰 우산을 찾아 쓰다가 마침내 폭우로 변하자 더욱 큰 우산을 애절하게 찾던 중 마침내 홍수 속에 떠내려가고 마는 역을 맡았다.
이 공연은 엉터리아저씨를 통해 상식과 사회규범에만 따라가는 현대인들의 생활모습을 비춰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 중에도「말씀」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활을 반성케 하는 심오한 뜻을 심어줬다.
시종 폭소가 그치지 않은 이날 공연은 총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됐는데 때로 월남말로 통역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공연자체만으로도 이해 가능하도록 꾸며졌다.
이날 어릿광대 역할로 월남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진만복 신부와 윤철원 신학생은 한국에서 유일한 어릿광대 연기자로 알려져 있는데, 어릿광대 역할로 좋은 사목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어릿광대 놀이의 세계는 천진한 동심의 세계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을 위한 선결요건이라는 것(마태오18, 3)이 그 주된 이유.
우리나라의 놀이마당처럼 예로부터 세계각처에서 펼쳐지던 어릿광대놀이가 현대에 와서 본격화된 것은 약20년 전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지난 83년 9월부터 12월말까지 고향인「시카고」에서 어릿광대 수업을 받은 진 신부는 1960년 한국에 와 사목하면서 유창한 한국어로 부산 서울등지에서 이미 10여 번 어릿광대놀이를 주도했다
어릿광대노릇을 하기위해 당시(50세)까지 기르던 긴 수염까지 깎아버렸다는 진 신부는 『어릿광대놀이는 물질문명 속에서 마음이 굳어져버린 현대인들에게 부드럽고 천진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면서 『시간이 있는 대로 전국가지에서 어릿광대노릇을 기꺼이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