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 언덕길에 녹음이 우거진 그늘 밑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성거리고 있다. 어쩐 일로 오셨느냐고 묻자 수련받고 있는 딸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어떡하죠, 수련자는 면회가 안 되는데…”하고 어렵게 말씀드리자 면회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또 왔다고 한다.
당신은 신자가 아니라서 딸이 선택한 길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수도생활이 고생스럽다고 남들의 말을 듣다보니 무척 걱정스럽고 궁금하다는 것이다. 나는 딸의 이름을 묻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어려울 때도 있지만 하느님 사랑으로 서로 돕고 기쁘게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덧붙여 공동생활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니 아까보다는 훨씬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저기 2층 창문으로 딸이 지나가는 것을 봤어요. 사실은 오늘도 혹시 지나갈까 해서 보러왔지요” 아주머니의 지극정성에 마음이 뜨겁게 찡해왔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서 수련기 동안만 면회가 안 되니 조금만 잘 참으시라고 천천히 돌려보내드렸다.
저녁밥을 먹고 시장 안 문방구에 들려 올라오는 길이었다. 어머니께서 가방을 메고 친구분과 함께 내려오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 어디 다녀오세요?” “기도모임하고 집에 가는 참이다.” 수녀원 아래 신자집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는 모임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전철로 5구역이나 떨어진 곳에 사시는 어머니가 굳이 여기까지 오실 이유는 없었다. 건강 하냐, 잘 지내느냐, 겸손하게 살아라 등의 말씀을 하시고는 총총히 사라지신다. 그렇게 시장 한가운데서 만난 모녀의 상봉은 반갑고도 무척 싱거웠다. 아니 난 왜 어머니가 이곳까지 기도모임을 하러 오시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딸이 살고 있는 수녀원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겠지. 요행히 길에서 딸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드디어 그 바람(?)이 오늘 이루어진 것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머니가 있었다. 미쳤다는 자식을 찾아 문밖에서 단 한번만 예수님 만나보기를 기다렸던 성모님…
어머님의 마음, 그저 한번만 보아도 자식의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
나는 말없는 어머니의 사랑에서 또 한 번 인간애의 진실됨을 발견하고 행복한 딸임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