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화 추세와 평균수명 연장 등으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특히 가정에서 거주하는 재가(在家) 노인들을 위한 정부의 복지시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주장은 노인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무의무탁하거나 장애 등으로 복지시설에 수용될 수 밖에 없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인들에 공통된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설 수용자 위주의 노인정책이 참다운 의미의 노인복지를 저해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92년 보사부의 ‘보건사회 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86년 전체 인구의 4.4%에서 91년 5.1%로 0.7% 늘어났는데 비해 14세 미만의 유년인구는 같은 기간 동안 29.1%에서 25.3%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도 선진국형의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보건사회부가 예측한 2천년대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6.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앞으로 노인복지를 위한 사회보장 지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한편, 이때를 대비한 노인복지 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0대 정년에 밀려나 허송세월하고 있는 숙련된 일손들, 기껏해야 2~3만원 정도의 한 달 용돈을 갖고 그나마 자식들 눈치 보느라 마음 편할 날 없는 노인들, 경로당의 한 친구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보아도 성의를 표시할만한 ‘여유’가 잡히질 않는 것이 이 시대 노인들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노인들을 위한 정부의 복지정책은 그동안 양로원과 같은 시설입주 노인들을 주 대상으로 해왔다. 그러나 전체 노인문제는 비단 이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80 노모를 모시고 둘이 살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 심모주부(수원시 권선구)는 치매증상을 보이고 있는 노모를 장사나갈때 마다 방에 두고는 밖으로 문을 잠그고 다닌다. 종일 걱정이 떠나질 않지만 생계를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 심씨의 하소연이다. 노모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며칠씩 장사를 거르기가 일쑤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노모를 맡길 수 있는 탁로소나 치매노인 전문 요양기관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 심씨의 바람이다.
심씨의 경우에서 재가노인 문제의 한 단면을 읽을 수가 있다.
재가노인이란 넓은 의미로 시설에 수용되어 있지 않은 노인 전체를 말하지만 사회복지 측면에서 볼 때 무의무탁 노인이나 거택보호 대상자들이 우선 범주에 속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전국에 12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이들 거택보호 대상 노인들은 생활보호법에 의해 정부의 보조를 받고는 있으나, 그 내용은 쌀 양곡 합해 12kg에다 연료비 명목으로 매월 지급되는 3~4만원이 고작이다. 그나마 혜택을 받기 위해선 65세 이상에 부양할 아들이 없거나 있더라도 불구나 폐질 등으로 부양능력이 없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들 외에 자식이 있더라도 사회여건의 변화 탓으로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도 있다. 자녀들과 떨어져 살거나 맞벌이 부부인 경우 노인들은 거의 종일 홀로 보내야 하는 실정이다. 한국 노인복지회 조기동 회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며느리들은 직장을 포기하느냐, 시부모를 모실 것인가를 택일해야 하는 갈등을 겪게 됐다”면서 사회변화에 따른 이러한 경우에 국가가 적극 개입, 노인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노인복지정책이 시설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것은 “독립생활 능력이 없는 노인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시설에 수용, 생계를 돌봐주는 것이 노인문제를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즉 사회복지 서비스 초기단계에서는 무의무탁 노인 아동 장애인 등을 수용,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 시설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시설보호는 노인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시키는데다 단체생활에 따른 통제성과 규칙성 때문에 복지 서비스가 자칫 관료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흐를 위험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심지어 가족들이 노인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복지시설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정부가 시설보호 노인복지 정책에 치중하면 할수록 시설보호 노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노인들 스스로가 시설에 수용되기 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재가노인 복지시책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이 조사한 노인생활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71.1%가 노후에 자녀와 동거하기를 원했고, 양로원 등 시설생활을 원하는 노인은 전체의 0.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노인복지 정책은 자녀들이 집에서 노인들을 모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등 재가노인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전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가정봉사원 파견사업’이나 경미한 중풍·치매환자를 돌보는 탁로소, 방문 간호제도, 출장 휴가 등 단기간 노인들을 보호해 주는 단기보호소 등 프로그램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불과 2~3년 전에 시작, 태동기인데다 지역 또한 아직은 제한돼 있어 앞으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더욱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하루속히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