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다.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보다 가까이 체험하기로 작정한 전례주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에 매달렸을까? 그 방법 외에는 인간 구원이 없었는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품위는 어디로 가 버렸는가? 당신이 지상에서 하실 일도 많으셨을 텐데, 왜? 가늘고 길게 길게 사시기를 포기하시고 짧고 굵게 사시는 방법이 하느님의 뜻이었던가? 하시고 싶은 일을 지상에서 실컷 하시고 연로하셔서 승천하시는 방법도 있으셨을 텐데.
세상에 맛이 들은 우리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좀 더 있다가 신앙을 가질 건데… 괜히 일찍 믿어서 손해 봤다고 여기는 신자들도 있다. 신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장애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하여 가늘고 길게, 살아있는 한 최대로 인생을 만끽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다. 여유 없는 자, 생활이 어려워 먹고살기에 바쁜 자는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둔한 짓이며 사치생활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는 세상살이에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인다. 구원은 죽을 때에만 문제가 되는 것인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은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짓눌릴 수 있는 것일까? 물어보자, 그렇게도 돈과 명예와 권세가 좋은가? 하느님보다 더 좋은가?
이런 잘못된 신앙들의 사고방식이 오늘의 교회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소위 중산층 이상의 교회, 기득권자들만 대변하는데 급급하는 교회, 대형화되어 비인격적인 소외감이 가득 찬 교회, 사회에서 사는 삶과 신앙이 유리된 교회,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해도 방관하는 교회, 과연 주님이 살아 계시는 구원의 표지로서의 교회인가? 아니면 주님을 양념으로 가미한 사교단체인가?
하느님 없는 교회, 신앙 없는 교회를 버려야 한다. 거짓과 위선의 껍질을 벗기고 단지 하느님만을 남기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바라보라. 그분은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 교회여! 우리도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버리자! 이것이 교회의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