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10일 폴란드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레흐 바웬사. 그는 80년대 그다니스크 소재 레닌조선소 파업을 발판으로 동구 사상 최초의 자유노조를 결성 공산 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혁명을 성사시키고 또한 89년 동구 최초의 비공산계 총리를 배출시키는 등 동유럽 민주화 개혁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이와 함께 그는 1983년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유노조를 창설한 공로와 자유노조와 폴란드 당국 사이의 대화를 위해 밀고 나갔던 일관된 비폭력주의를 인정 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레흐 바웬사는 이러한 이유들로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가장 유명한 폴란드인으로 손 꼽혀지고 있다.
각종 매스컴에서 다뤄질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독실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열심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1943년 9월 29일 폴란드 중부 시골 포포보에서 가난한 목수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친 바웬사는 직업학교에 들어가 전기 기술을 익힌 후 67년 그다니스크 레닌조선소에 취직하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폴란드혁명의 불을 당긴 그다니스크 파업 때 최고의 지도자로 부상했던 그는 자유노조와 파업권을 쟁취했고 그해 9월 슬리대리티 전국조정위 초대 의장에 뽑히면서 폴란드에 자유화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81년 보이체흐야루젤스키 당시 공산당 제1 서기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유노조를 불법화하자 바웬사는 11개월의 고독한 감금생활을 당해야 했다.
마침내 90년 12월 10일 바웬사는 폴란드 최초의 민선 대통령에 당선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40여 년간 지속된 폴란드 공산체제를 종식시켰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바웬사가 폴란드 최고 지도자가 되기까지에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믿음, 폭 넓은 역사의식, 정치적 통찰력, 불굴의 용기 등이 그 이유로 열거되고 있다.
특히 그의 가톨릭 신심은 평화적 자유화 투쟁 노선을 견지하게 됐다.
그는 연설하는 장소마다 반드시 벽에 십자가를 내걸었고 중요한 모임에 나갈 때마다 십자가를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헌신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또한 노조운동을 통해 폴란드를 소생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81년 초 그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용기와 신중함 그리고 온건노선에 찬양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황은 「자유노조」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였었다. 그의 투쟁 방식은 폭력을 배제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바웬사는 「제2의 일본」을 만들겠다는 약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만회하기 위해 경제 해법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의 주된 목적도 폴란드 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와 차관 유치를 위한 것이다.
꽃가게 점원 출신인 부인 다누타 여사와의 사이에 8남매를 두고 있는 바웬사는 비록 현재 정치적 위기를 맞고는 있지만 끈질긴 저항운동에서도 덕성, 진실, 인간 존중 정신과 굴하지 않는 추진력으로 승리를 얻어냈던 순혈 노동자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