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인터뷰] 루마니아 첫 유학생 스커를러토유씨

입력일 2017-06-07 17:04:17 수정일 2017-06-07 17:04:17 발행일 1992-05-31 제 180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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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루마니아 교류에 한몫할터”
이웃친절로 편안한 생활
교통체증이 가장 힘들어
“나를 한국땅에 오게하신 주님께 감사”
「첫째, 항상 바쁜 하루 하루속에서도 나를 이곳에 보내주신 하느님을 생각하다. 둘째 내가 너무 바빠서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하느님이 저를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루마니아 유학생 1호, 그리고레 스커를러토유(23세)씨는 항상 이러한 생활신조로 한국에서의 바쁜 유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일찍부터 동양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스커를러토유씨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지난 90년 9월.

그는 90년 3월 한국과 루마니아간의 국교가 수립되자 외교차원에서 실시된 유학시험에 응시, 높은 경쟁율을 뚫고 합격해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공산권 국가였던 루마니아가 89년 겪었던 민주화혁명은 새로운 자유화의 바람을 몰고 왔고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그에게 이렇게 새로운 생활을 가져다 주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스티에서 살았다는 젊은 청년 스커를러토유씨는 한국과 루마니아의 날씨가 비슷하고, 사람들이 모두 친절해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제 막 문을 연동구권의 한 청년이 개방된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겪어야 하는 동ㆍ서양의 문화적 차이, 생활의 팬턴, 사회 구조 등의 차이는 아직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조국이 그립거나 멀리 있는 부모님이 생각날 때면 조용히 모국어로 기도를 드려본다는 그는 어릴적 유아세례를 받았다.

루마니아에도 한국처럼 가톨릭신자가 많다고 자랑하는 그는『자유화 이전에도 루마니에 종교의 자유는 어느정도 있었지만 아주 개방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하며 『자유화 이후 지난 크리스마스때는 텔레비전에서 성탄미사장면을 상영하는 등 이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 한국에서 미사를 봉헌하러 명동 성당에 들어갔을 때 그는 한국과 루마니아 성당의 분위기가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것은 한국의 성당에는 제대위를 제외하고는 거의 초를 켜 놓지 않는데 반해 루마니아의 성당은 곳곳에 초를 켜 놓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드릴수 있도록 한다는 것.

현재 서울 대학로에 있는 국제회관 외국학생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그는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면서 주일이면 성당에 다니면서 방학때면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인과 한국의 독특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있다.

동구권의 한 사람으로서 처음 한국을 대하면 『한국은 참으로 멋있는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그는 『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국 나름대로의 민주주의를 이룩해 간다면 한국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중에 「교통체증」이 가장 어렵고 힘든 것 중의 하나라는 스커를러토유씨는 남은 유학생활동안 『설악산과 제주도를 꼭 한번 가보고 싶으며 연극써클에 가입,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젊은 가슴에는 『공부를 마치고 조국 루마니아로 돌아가면 외무부에서 근무 한국과 루마니아 양국의 관계개선과 활발한 교류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거대한 포부도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