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 집이 동대구역 부근에 있을땐 대구에 친정, 시댁 부모님이 버젓이 계심에도 다 제치고 나부터 만나러 오곤 했다.
그럴때마다 내가 성의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맘껏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번엔 좀 달랐다. 전화기에서 흘러 나오는 그녀의 말투가『주야! 나다. 숙이』『어데고? 대구가? 그럼 우리집에 와야지』『야 너 밥하기 귀찮다. 밖에서 만나자.』
친구는 중년여인의 주방 일거리를 덜어줄려고 선심을 쓴다. 점심사겠다며 나올때 저희 아이 쓰던 영어 카세트 테이프 물려준것 가져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질녀가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되물려 준다며….
우린 동아쇼핑 지하에서 떡국을 시켜놓고 처음부터 자녀 문제에 얘기 초점을 맞추었다. 아들 둘만 둔 그녀는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시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서울대에 못보낸 것을 안타까워 하며 소위 일류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입시에 실패한 이들도 많은데 그녀는 사치스런 고민을 하고 있는것 같아 좀 나무랬다.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하느님 뜻에 맡기고 그날 최선을 다하면 된다며 그러는 나에게 도리어 면박을 준다. 과외 못시켜 서울대에 못보냈다며. 그뿐인가, 고1 중2 남매를 둔 나에게 괴외를 시켜서라도 나중 후회 없도록 열심히 시키라는 것이다. 또한 어느 대학에 목표를 두었는지, 모의고사점수하며 몇시에 자고 몇시에 일어나는지 낱낱이 따지고 물었다. 아니 차라리 심문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내가 하는 일에 열심히 하다보니 그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자 정신상태가 해이 해서 큰일났단다. 교육을 단단히 받고 보니 어안이 벙벙하고 어찌해야 할지, 선배님(?)의 말이 경험담 이기에 걱정도 되었다.
내가 너무 무심한걸까? 공부는 본인이 깨달아서 해야 하는거라고 말하는 내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어릴적부터 성가정 분위기에서 자란탓인지 매사에 낙천적 성격이던 그녀가 언제부터 일류병(?)의 노예가 되었는지 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맙소사, 하느님! 프랑스의 작가 레옹 블로아(Leon Bloy)의 말이 생각난다『사람이 빵없이도 살 수 있다. 집도 사랑도 행복도 없이 살 수 있다. 그러나 신비 없이는 살 수 없다』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박도식 신부님이 쓰신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그녀도 나도 성모님의 사랑안에서 살고 있는 자 답지 않게 이기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나에게 경험자로서 훈계해준 것은 고맙다고 몇번이고 얘기 했지만 서로 반성할 점도 많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