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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선고 특집] 대립과 갈등… 교회 역할은?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17-03-14 수정일 2017-03-14 발행일 2017-03-19 제 303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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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반대” 모두 우리 국민… 대화하면 화합 어렵지 않다
국정농단 사태 불거진 이후  교회, 공동선 수호하고자 나서
세대·이념간 논쟁 치열하지만 ‘다름’ 존중하는 문화 선도해야

현직 대통령 탄핵. 그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 어쩌면 모두가 패배자일지도 모른다. 탄핵 정국이 계속되는 동안 국민과 정치권은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갈등을 키워나갔다.

시국 안정을 촉구해온 한국교회는 이제 ‘국민 대통합’을 시작할 것을 천명했다. 교회는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상처 받아 갈라졌던 마음을, 먼저 나서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의무다.

■ 해법 찾지 못한 대립과 갈등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대통령이 헌법과 국민 손에 의해 자리에서 내려오는 기막힌 사태를 맞았다.

한국교회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뉘우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전국 가톨릭대 신학생들이 시국선언에 나섰고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해 해외 한인 사제들까지 동참하고 나섰다.

교회가 직접 나섰던 것은 공동선을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은 일종의 덕이며, 정치생활 참여는 도덕적 의무”(220항)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회는 더욱 어지러워져만 갔다. ‘촛불’은 타올랐지만 대통령은 국민에게 진실한 사과 대신 변명과 말 바꿈으로 일관했다. 정치권은 무서운 민심 앞에 어찌할 줄 몰라 갈팡질팡했다. ‘태극기’ 집회는 세대 간 날선 이념 논쟁을 더욱 부채질했다.

3월 10일 대통령 탄핵 심판 인용 선고를 내린 직후의 헌법재판소 사진 박지순 기자

3월 10일 대통령 탄핵 심판 인용 선고 소식을 듣고 있는 시민들 사진 박지순 기자

■ 이제는 국민 대통합이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수들 사이에 막혀있던 담들도 결국 허물어지듯이 하느님은 모든 것을 화해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복음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모든 이념과 갈등과 대립을 초월한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기자 인터뷰를 통해 “탄핵을 찬성한 사람과 반대한 사람 모두 우리 국민이며, 탄핵이라는 결과는 결국 국민 모두 승리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대통합을 위해 김 대주교가 내놓은 해법은 ‘대화 문화’다. 헌법이라는 절대 가치 안에서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보듯, 시민들은 폭력적인 사태 없이 평화 시위 문화를 이룩했다. 극한 대립이 없어도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다면 대화와 화합은 어렵지 않다. 한국교회는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만큼 대립과 갈등을 거두고 안정된 나라를 만들어나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예수님 사랑과 화합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14일 저녁 서울·수원·의정부교구 사제단과 남녀 수도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대구가톨릭대 신학생들이 지난해 11월 2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자리에서 촛불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수원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지난 1월 23일 수원 주교좌 정자동성당에서 봉헌한 시국미사 중 사제단과 신자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헌재의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 관련 메시지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오늘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제는 탄핵을 지지했든 반대했든, 정치권과 국민들이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 통합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가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국가의 공동선 추구와 국론 통합입니다.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온 국민이 냉정하게 인내와 슬기를 가지고 이 혼란스러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무엇보다 국정 책임자들은 국민에게 끼친 걱정을 송구하게 생각하고 국민 앞에 진정으로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정치 지도자들은 당리당략과 이기심보다는 국민의 공동 이익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서 하루 빨리 정치와 경제의 안정을 이루어 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상호 비방과 분열을 뒤로하고 화해와 일치를 통한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도 이제는 화합의 길에 동참하고, 일상에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해야 하겠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사순절을 보내며 통회와 보속, 내적 정화로써 신앙 쇄신을 위해 더욱 힘쓰는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먼저 회개하여 참으로 우리 생활 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냅시다. 그리고 신앙과 복음을 증거하며 희생과 봉사로 이 땅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고 우리나라가 하나가 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보잘 것 없는 형제를 돌보고 미움과 다툼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 모두가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가 죽음의 멍에를 벗고 생명의 그리스도께로 갑시다. 천주교 신자들도 이제 사회의 복음화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민의 화합과 일치를 돕고 참다운 민주 발전을 북돋아, 진정으로 공동선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민주주의 회복할 과제 주어졌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선고는, 국민이 선출하여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선고를 아프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굳건히 뿌리내려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심리와 선고 절차를 인내와 지혜로 이끌어 주신 헌법재판관들께 감사드리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정부 관계자들도 혼란한 국정을 잘 수습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국민 여러분도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평화 건설을 위하여 힘과 지혜를 모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한국 남자수도회 장상협 회장 호명환 신부

“하느님 섭리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내린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올바른 역사적 판단입니다. 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부르짖음을 귀 여겨 들으시는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섭리의 결과이며 우리 모두는 이 구원하시는 섭리에 순종하며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후 사회의 정의로운 통합을 위해서 우리 수도자들은 죄인들이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느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 회장 이영자 수녀

“더 큰 평화와 화합으로 성장하기를”

오늘 우리는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뤄낸 민주주의 역사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정의와 진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저마다 촛불을 밝혀들고 모여든 자리에서 체험했던 놀라운 연대감을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오직 평화와 공동선을 위해서 하나 됐던 새로운 관계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기억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이 참된 평화와 정의가 시작되는 날이 되려면 무엇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연대하며 일치를 이뤄 함께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기도와 눈물과 탄식으로 틔워낸 민주주의의 싹이 꺾이지 않도록 더 이상 우리 안에 분열과 미움과 다툼의 자리를 허락하지 말기를 희망합니다.

정의와 진실의 새싹이 더 큰 평화와 화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햇볕도 쪼여주고 바람도 막아주며 소중히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작은 시작을 위해 우리 수도자들이 먼저 회심하겠습니다. 우리 모든 국민이 하나돼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깊고 간절한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