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별대담] 가톨릭 원로에게 듣는다-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한국사회와 그리스도인’을 논하다

정리·사진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6-11-15 수정일 2016-11-18 발행일 2016-11-20 제 3020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나라 어려울 땐 교회가 ‘사회의 어른’ 역할 해내야”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을 감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더 크게 눈을 뜨고 불의가 정의를 압도하는 현실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시 : 2016년 11월 12일

■ 대담 : 장병일 편집국장

100만을 훌쩍 넘어선 촛불이 한반도 곳곳에서 타올랐다. 성난 민심은 시간이 더할수록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광야로 나선 국민들은 스스로 촛불을 밝혀 서로에게 길이 되어주고 있다.

가톨릭교회, 교회를 이루는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길을 찾고 어떤 모습으로 그 길에 나서야 할까.

교회 원로인 성염(요한 보스코·73)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대담을 통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치켜들어야 할 촛불,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밝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본다.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현 시국 전반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이하 성 대사): 로마 속담에 ‘나무둥치가 쓰러지면 가지는 아무나 잘라간다’고 합니다. 기본 가치가 몰락하면 덩달아서 많은 이, 국가의, 국민의 감정과 가치관이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나 교우들께서 함께 걱정하시는 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사실이 하나씩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도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견강부회함으로써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이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이 거짓말을 그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언어라고 여기면, 이게 가져올 사회적인 파장이 얼마나 클까 걱정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금주에 수능시험이 있죠. 지금 고3을 생각해보세요. 자신들은 그렇게 3년, 6년간 꼬박 시험 준비를 해왔는데, 누구는 대통령 백으로, 장관 백으로 너무나 손쉽게 원하는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그 사회의 모든 질서와 정의 개념이 몰락하게 돼버립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정치의 최고 권력 언저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종교인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 종교는 무엇을 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장 국장: 일각에선 대통령 하야나 탄핵은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정치권이 해야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다면.

-성 대사: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볼 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 때문에 만인에게 죽음이 오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정치 지도자를 잘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이 그 민족 전부에게, 그리고 그 국가 전체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는 상식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민이 지도자를 뽑는 투표 한 표가 그 후보의 당락을 좌우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 투표자의, 우리 국민 전체의 영원한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과 여론이 95% 가까이 동조한다고 생각하는데, 현 대통령은 위기를 수습하고 국민들과 함께 여론을 모아서 사태를 풀어갈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보수언론들마저도 하야하는 것이 혼란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혼란을 수습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국론」에서 “평화는 정의에서 온다. 정의를 유린하는, 상실한 국가권력은 사법권이 없다”고 했어요.

95%의 국민이 절망하고 있고, 수십만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고 있는 지금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지성인들, 가톨릭대학교 신학생들까지 나서고 있습니다. 절망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맡길 수 있을까요.

야권이든 여권이든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란 기준에 맞추어서 정의로우면 하고, 정의롭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국민들이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장 국장: 지금 같은 리더십 붕괴가 가져오는 폐해를 조기에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말씀해주십시오.

-성 대사: 너무나도 상식적이게도 백성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땅의 많은 이들이 촛불을 밝혀드는 건 단순히 감정이 격앙돼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운명을 놓고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제나 국민의 이런 면을 염두에 두고서 해결방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제가 사는 시골 노인정에서도 현 대통령을 지지한 노인들조차 더 이상 TV를 틀지 않고 모이지도 않아요. 그만큼 충격이 큰 거죠. 하루 빨리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결코 눈감아선 안 됩니다. 오히려 더 크게 눈을 뜨고 불의가 정의를 압도하는 현실과 싸워야 합니다. 제 몫을 찾아야 합니다.

세월호 문제를 비롯해 사드 배치 등과 관련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입장을 발표하면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것이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다가갑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평위이니까 주교회의 전체가 발표한 게 아니라면서 교회와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더라도 자기는 정당하다고 하는 모습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주교단 전체 이름으로 나오는 성명서가 신자 전체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간 교회는 늘 약자들 편에 서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으로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 있고, 그들을 편들어서 지켜주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심었습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려봅시다. 그분은 나라의 어른으로 나라가 위기로 향해 갈 때, 목소리를 내주셨습니다. 교회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의 뇌리 속에 가톨릭교회는 어른 이미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주교단이 어른이요, 이 어른들이 지혜를 표명해주면, 그것은 신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신뢰성 있는 지혜로 다가갈 것입니다.

‘불의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참하는 것이다’라는 로마 속담이 있어요. 그간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원수, 곧 삼구(三仇:육신, 세상, 마귀)영성을 중심으로 교리를 가르쳐왔습니다. 이 때문에 사회교리가 구교우들에게는 아주 생소합니다. 따라서 사회교리를 강조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마저 매우 생소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주교님들이 사회교리를 간추려 내시고 청년들을 위한 사회교리서 등을 만들어내지만 보급이 안 돼요. 왜냐하면 일선 본당 신부님들에게도 사회교리가 낯서니까 정서적으로 안 받아들여지고 신자들에게도 쓰일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존재들입니다. 이번 일을 기회 삼아 다시 한 번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장 국장 : 큰 식견으로, 우리나라, 아울러서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큰 그림을 그려주시면.

-성 대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4년 8월 18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3차 대전은 범죄와 대량 학살, 파괴와의 싸움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교황님께서 “전쟁은 광기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형제 간의 결속을 끊는 등 모든 것을 파괴하며 파괴만이 전쟁의 목적”이라고 비판하신 것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주교황청 대사로 있던 시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핵문제는 ‘검증 가능하게, 공평하게!’라는 말로 강조하셨습니다. 이게 사태를 바라보게 하는 아주 핵심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신앙인들은 그 시각에서 우리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예로 사드 배치는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3차 대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드가 배치되고 나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요.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한반도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운명에 처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어려운 때일수록 가톨릭교회는 사회의 어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지진이 났을 때 한국교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뻗쳤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수해가 났을 때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대국적 시각에서 가톨릭교회가 나서 우리 국민들에게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위기일수록 어른다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들 사이에게 복음에 대한 신뢰를 얻고 복음 선교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국민의 지혜를 일깨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위기를 호기로 반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왼쪽)와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2016년 한국사회와 그리스도인’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1942년 7월 11일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사(197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석사(1976년), 교황청립 살레시안대학교에서 라틴문학박사(1986년) 학위를 받았다. 1988~199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1991~2005년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3~2007년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활동하며 교황청과 한국교회 간 가교 역할을 했다. 이 공로로 2005년 7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수여한 ‘비오 기사회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정리·사진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