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우리를 살리는 ‘생명들’ / 김은실

김은실(베로니카·천주교농부학교 강사)
입력일 2014-03-18 02:32:00 수정일 2014-03-18 02:32:00 발행일 2014-03-23 제 288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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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하게 단비가 내리는 날입니다. 간절히 기다렸던 비라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작년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비가 와서 다행입니다.

농부가 되고난 후, 겸손을 배웠습니다. ‘하늘만 바라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농사는 농부가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짓는 것이고, 작물들 스스로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농부는 그저 씨 뿌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정도가 다입니다. 아무리 물을 준다 해도 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비는 단지 땅을 적시는 것뿐 아니라 영양분도 함께 내려줍니다. 그래서 비온 뒤 작물들은 눈에 띌 정도로 쑥쑥 자랍니다. 물론 적당한 바람과 햇빛도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허락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은총임을 알았을 때 모든 것이 다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분의 크심과 인간의 작음을 체험한 후 제 안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하느님 앞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자신을 낮추게 되었고, 사람들을 대할 때 좀 더 온화해졌으며, ‘생명’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자연의 모든 것은 공존합니다. 서로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생명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놓은 동물과 식물들을 생각한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어영부영 헛되이 살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기쁘게 매일을 살아야합니다. 저의 생명에 깃든 다른 이들의 생명을 함께 살아내야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자연의 큰 그물망 안의 작은 한 마디입니다.

김은실(베로니카·천주교농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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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베로니카·천주교농부학교 강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