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서 ‘복음 증거하는 삶’ 살겠습니다”
하느님 바라시는 ‘몫’에 따라 그 길 걸어갈 것
‘더 많이 생각·배려하는 것’ 주교로서 할 일
교구장 협력해 맡겨진 일 성실히 수행할 터
“예.”
그 한 마디 외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왜 저인가요?”
누구보다 먼저 하느님께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 뜻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것뿐임은 알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과 주한교황대사관이 동시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임명을 발표한 직후, 본당신자들과 마주선 유경촌(티모테오) 주교는 “모든 사제가 그렇듯 내 뜻이 아닌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야 하며, 그 길은 기도 없이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30일 성탄시기의 끝자락, 한국교회와 서울대교구에 새로운 주교 탄생이라는 큰 선물이 주어졌다.
주교 임명 소식이 전해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유경촌 주교의 일상은 평소에 보내던 월요일과 별다를 바 없었다. 아침미사 후 사제·부제 서품식을 앞두고 본당 신자들과 함께 봉헌하는 묵주기도, 성무일도…. 그리고 이어지는 시간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기도로 채운 하루였다.
“제가 아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몫을 이루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더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몫이라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 신임 보좌주교로 임명된 유경촌 주교가 오랜 묵상 안에서 길어 올린 것은 ‘말’이 아닌 보다 구체적인 ‘삶’에 대한 다짐이었다. 무엇보다 유 주교는 “교구장 대주교님께서 펼치시는 사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협력자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일부터 성실히 수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교구민들과 교구 신부님들, 수도자들의 좋은 의견과 아이디어, 건의 등도 교구장님께 잘 전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당장은 보좌주교로서의 소임을 잘 실천할만한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이 더 크게 밀려들고 있다고.
어린 시절의 유 주교는 누나 손을 잡고 성당에 가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복사를 서고 싶은 마음 하나로, 어두컴컴한 새벽길도 신나게 내달렸었다. 그때 이후 사제로서 사는 매일매일은 늘 새롭고 기쁘게 다가왔다. 반면 본인이 주교직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피하고만 싶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도 “훌륭하신 신부님들이 많은데, 왜 저에게 당번이 돌아왔을까 하는 의문을 버릴 수 없었다”며 “너무 부실한 사람이 주교가 되어 걱정스럽기만 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유 주교는 인터뷰보다는 인터뷰를 위해 성당을 방문한 기자들의 끼니와 편의를 챙기기에 바빴다. 평소 상대가 누구든 매순간 먼저 배려하고,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던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스스로는 ‘뭐 하나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만, 유 주교와 잠시라도 함께 생활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그에게서 풍기는 따스한 심성과 배려심, 검소한 생활 태도 등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유 주교는 소신학교 시절부터 ‘낮은 자와 함께하는 사제’로 살고 싶어 했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사회복지 활동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유학을 가서도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그 기간 중에 그에게 주어진 몫은 또 다른 형태로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구체적으로 1990년대 전후로 한국사회에서는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문제점들이 두드러지게 드러났고, 이에 따라 유 주교는 창조질서보전과 관련해 보다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귀국 후 유 주교의 사목적 역량은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져왔다. 그는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로서는 물론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한 의식 제고와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시각을 확장하는 데에도 적극 힘써왔다.
특히 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에는 21세기 교회사목을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규정집 정리에도 크게 기여했다. 서울대교구가 설정 180주년을 맞아 집대성한 규정집은 보다 전문화된 사목행정 지침과 인력 개발 및 운영 등을 구현하는데 힘을 싣는 교구 행정의 총체적인 틀이다.
본당 사목현장에서는 누구보다 겸손하고 열정적인 사목자로 다가왔던 유 주교가 짧은 임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데에 아쉬움의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8월말부터 4개월 남짓 지내온 서울 명일동본당은 유 주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임을 맡았던 본당으로 남게 됐다. 유 주교는 “짧지만 본당에서 지낸 시간은 큰 복이었다”며 “주임으로서 임기를 못 채운데 대한 아쉬움보다는, 그나마 주어진 것이라도 잘 해왔는지 반성이 앞설 뿐”이라고 밝혔다.
유 주교는 앞으로의 삶에 관해서도 “혼자 열심히 하는 사제생활이기 보다는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주교로서의 몫이라 생각한다”며 “주교는 그 어떤 사제보다 앞장서서 복음을 실천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라고 전했다.
특히 유 주교는 “주교로서 어떤 직무를 엄청나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쓰시길 원하시는 대로 노력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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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62년 9월 4일 서울 출생
1978 ~ 1980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1981 ~ 1984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1985 ~ 1987년 군 복무
1988 ~ 1992년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1992년 1월 30일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1992 ~ 199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상트게오르겐대학교 박사(신학)
1999년 서울 목5동본당 보좌신부
1999 ~ 2008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교수
2008 ~ 2013년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
2013년 8월 27일 ~ 현재 서울 명일동본당 주임신부
2013년 12월 30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