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종」으로 이웃사랑 펼쳐 53년 영천서 공동체로 출발 필리핀 등지에 선교 및 사회복지사업 전개
1995년 10월 4일 현재 회원수 5백10명, 국내 11개 교구 65개 본당과 미국 일본 프랑스 소재 4개 본당에 수녀 파견, 17개 유치원 교육 담당, 교구에 파견돼 운영을 돕거나 수녀회에서 직영하는 사회복지시설 13개, 화원교도소에서의 교도사목, 외방선교의 일환으로 필리핀과 대만에서 펼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 침상 5백개 규모의 포항성심병원 운영···.
이상은 창설60주년을 맞은 예수성심시녀회(총원장=탁미리암 수녀)의 외형적인 모습을 대강 살펴본 것이다. 1935년 12월 8일 6명의 동정녀들이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본당 주임으로 있던 루이 데랑드(남대영) 신부의 지도아래「삼덕당」이라 이름 붙인 초가집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 것에 비교해본다면 실로 엄청난 변화임에 틀림없다.
공동생활을 시작한 이듬해 2월 18일 의지할 곳 없는 할머니 한 분과 버려진 두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성모자애원」 이 태동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녀」로서의 삶이 시작된 예수성심시녀회.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오 20,28)고 하신 말씀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인자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60년 세월이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불우한 사람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예수성심시녀회는 50년 영천에서 포항으로 공동체가 옮겨오게 되고 6.25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마침내 52년 9월 8일 「예수성심시녀회」라는 명칭의 수도회로 정식 인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8일 7명의 착복자를 내며 첫 수련을 시작했다.
또한 63년 1월 수녀회의 회헌이 교황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그 해 9월 15일 19명의 첫 종신서원자를 배출했다. 이에 앞서 56년 프란치스꼬의 정신으로 수녀들을 지도해온 창설자 신부는 수녀회를 성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68년 수녀원 자리에 포항 제철공장이 들어서면서도 모원과 본원은 포항 대잠동으로, 수련원은 대구 대명동으로 옮겨야 했던 예수성심시녀회는 92년 본원마저 대구로 옮기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77년 지역 주민들의 의료복지를 위한 성모병원을 개원, 82년 유아원과 독서실을 겸한 성심복지센터 개설, 85년 뇌성마비 아동의 치료와 교육을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어린이 집 개원, 88년 부랑인 수용시설 나자렛 집 개원, 88.89년 대구 울산에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 개원, 91년 양로원 인수 에리사벳집으로 개칭 운영, 94년 무의무탁자 공동체인 성주 평화농장 개원……
예수성심시녀회의 이 끝없는 활동력의 원천은 예수 성심의 사랑에 있다. 또한 「주님의 종」이라고 하신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으로서 항상 대기하고 있는 시녀의 자세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 정신을 본받아 자신을 송두리채 봉헌하는 영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또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회원들이 파견되어 봉사할 수 있기를 원했던 창설자 신부의 뜻대로 예수성심시녀회는 오늘도 「주님 손안의 연장」을 자처하며 겸손되고 기쁘게 그리고 참된 사랑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는 시녀로서의 소명을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