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정오 유지노 사할린스크 평화의 거리에 세워진 사할린 희생동포 위령탑 앞에서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 대구대교구 사할린 방문단 등 1백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할린 희생동포 위령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위령미사에는 삿포로 교구장인 지누시 주교와 사제단 등 일행이 참석, 과거 일제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한편 사할린 동포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이에 메시지와 강론 전문을 거재한다.
◆한국주교회의 의장 이문희 대주교
“「사랑의 일치」 이루자”
주여 우리는 지금「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생각하여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드리오며, 우리로 하여금 주의 어전에 합당한 봉사를 드리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나이다」(미사통상문)는 말씀을 진심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안식 주소서
지금 우리는 사할린 땅 한가운데 세워진 조그마한 비석 앞에 모여 이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뜻하는 바대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동포들의 영원한 안식을 빌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애타게 돌아오고 싶어한 조국을 조금이라도 옮겨와서 고향의 다정함을 느끼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우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50년전 해방이 되어 고국땅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바다로 막히고, 바다보다 더 무섭게 우리를 갈라놓는 나라의 담은 힘없는 우리 동포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고향 하늘을 바라보다가 잠든 그들의 가슴에 한 맺힌 바램은 고향땅을 밟는 것과 고향땅에서 마음놓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풍요로움은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남을 위해서 자신을 바칠수 있는 사랑만이 사람이 살수 있도록 생명을 북돋아 주는 길입니다. 그러하나, 남을 죽이는 전쟁이 사람의 살길인양 일본국은 한국인의 참전마저 강요했고 그 많은 우리의 청장년들을 이곳「가라후도」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 이름으로 오게 된 이들은 일본인이 아님으로 전쟁이 끝나도 이 땅에 강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것입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이렇게도 오래도록 겪어야 하는지, 하늘을 보고 물어본 것이 한두번이었겠습니까?
이기주의 팽배한 세상
이렇게 맺힌 한을 누가 다 알것이며 이런 슬픔속에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누가 다 알고 있습니까?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이 세상에 이기주의의 획책들은 여전히 국가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으며, 그로 인한 죄악의 참상들이 무죄한 이들의 죽음과 고통 가운데 드러나고 있어도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환경이 논리를 내세우며 오히려 이웃사랑의 실천자로 자처하는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것입니까?
이런 슬픈 죄악의 역사를 오늘 다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떠나가신 분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노여움도 끝내는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숨을 죽이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 면전에서 원한의 말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전쟁의 끝나고 50년의 세월을 흘렀어도 지상의 우리에게는 아직도 자유가 아쉽고 사랑이 그리운 것을 말로 다 할수 있겠습니까?
남을 위한 삶을 살자
그러나 오늘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오르시는 마리아를 따라 나선 우리는 이 세상뿐이 아니라 저 세상에까지 살아갈 사람들이고, 그래서 이 세상의 일이 이 세상만의 일로 끝나지 않고 저 세상에서의 갚음을 받기에 오늘의 죽음을 내일의 부활로 바꾸어 사는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위하는 것 못잖게 남을 위할수 있고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으로 스스로를 바칠 수 있으며, 서로 사랑하여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되고,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되어 참으로 구원되고 해방된 삶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일치는 오늘 이 미사성제로써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한몸이 되고, 우리의 이 일치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가능케 하고, 사할린의 동포 여러분과 러시아인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일치를 이룰뿐만 아니라 여기서 세상을 떠난 이들과 또한 그들과 함께 살던 가족들, 친척, 친구들, 산이와 죽은 이가 모두 한마음이 되어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여기서 체험하는 사랑의 기적이오,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인것입니다.
오늘 우리모두가 세상의 얽매임에서 풀려나고 하늘나라의 자유로움을 맛보는 성모승천 대출일, 이날을 우리가 광복절이라 이름하는 해방기념일로 가지게 된 것도, 또 이렇게 오늘 여기서 북해도교구의 지누시주교님을 비롯한 일본인 신부, 수녀, 평신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은 과연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사랑이 충만을 주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기 이곳뿐 아니라 온 러시아와 중국, 일본과 북한 모든 곳에 사는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하여 그 사랑으로 사랑의 일치를 이루며 살도록 이제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우리의 참 고향인 하느님의 나라의 정다움을 깊이 느끼고, 저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가운데 끝없는 안식을 누릴 것을 우리 모두 마음모아 간절히 빌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1995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사할린의 추석날
유지노 사할린시 한인 위령탑 앞에서
◆일본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하마오 후미로 대주교
“전쟁의 상흔 재검토 해야”
사할린 거주의 조선ㆍ한국인 여러분 금년은 제2차 대전후 50년에 해당하며 아직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에 관해 더욱 재검토할 필요에 처해 있습니다. 일찌기 일본이 조선ㆍ한국을 지배했던 36년 동안 약 5만명의 조선ㆍ한국인을 카라후토(사할린)으로 강제 연행하여 노역케 하였습니다. 1945년에 전쟁이 종결한 때에는 다수의 조선ㆍ한국인이 현지에 버려졌다는 사실은 지금도 우리들 일본인에게는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는 슬픈 과거입니다.
전쟁후에도 여러분은 일본제국주의의 협력자라고 장기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오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또 현재 여러분은 북조선, 또는 한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공화국에 걸치는 지역에 가족을 남겨두고 있는 이산가족이라는 것도 매우 유감스럽게 또한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앞으로 일본국 정부가 어떠한 방법으로 노력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 가톨릭 교회로서는 그리스도에의 같은 신앙을 지닌, 우리들의 교회공동체로서의 관련에서, 러시아 공화국, 중국의 동북지방 등의 교회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전후 50주년 기념행사에 한국 주교회의 의장이신 대구의 이문희 대주교님께서 몸소 사할린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저는 참가할 수 없으므로 삿포로 교구장이신 지누시 주교께 대리를 부탁드렸습니다.
이 대주교님과 함께 여러분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감사드립니다.
◆삿포로 교구장 지누시 주교
“비인도적 만행 용서 청합니다”
일본 주교협의회 회장 하마오 주교님의 메시지에 앞서 한마디 드립니다. 저는 일본주교단의 일원으로 이곳 유지노 사할린스크에서 여러분과함께 미사를 드리게 됨을 감사하면서, 여러분의 표현할 수 없는 수없는 고통과 탄식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도록 용서를 청하는 바입니다.
방금 이 대주교님의 강론을 듣고 마음으로부터 고통, 탄식, 슬픔이 끓어 올라, 저는 무엇을 말씀 드려야 좋을지 모를 정도입니다.
일본국의 강요에 의해 비인도적인 삶, 인간성에 반한 갖가지 삶을 강요당하고, 전쟁 협력으로까지 내몰려, 마지막으로는 이 땅에 버려진 사람들의 아픔은 생각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아픔을 어디에도 호소 할 수 없었던 한을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이 비석앞에서 여러분과 이미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께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사과를 드리고 진심으로 사죄를 청하고자 합니다. 또 일본의 가톨릭 교회가 약 50년 전에 군부와 국가의 압박과 강제중이었을지언정 전쟁의 악에 대하여 비인간적이고 비복음적인 흐름을 강하게 지적하고 규탄하지 못했음을 반성함과 더불어 전쟁후에도 오랫동안 이다지도 많은 분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보다 일찍 깨닫지 못했다는것,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사과말씀 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