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 이후 한국 성직자 계보 현황

입력일 2012-03-20 09:42:55 수정일 2012-03-20 09:42:55 발행일 1996-07-07 제 201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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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순교 후 올해 7월5일 현재까지 한국인 사제 2천5백명 탄생
1855년「성요셉 신학당」국내최초… 병인박해때 폐교
국내서 첫번째 서품-강도영·강성삼·정규하 신부
84년 103위 순교자 시성 기점 급속 증가
1백38년간 배출한 사제 수 12년만에 경신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성인 순교 이후 1996년 7월5일 현재까지 지난 1백50년 동안 한국인 사제가 2천5백여 명 탄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건 성인 순교 1백50주년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신부 축일을 기념해 가톨릭신문이 국내 대신학교 출신 한국인 사제 서품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2천4백90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중국에서 서품받은 김대건, 최양업 신부를 비롯해 해외에서 사제서품된 교구 및 수도회 소속 성직자들의 수를 합하면 1996년 7월5일 현재 역대 한국인 총 사제 수가 대략 2천5~6백 명 선으로 추정된다.

해외 사제 서품자 수는 교구와 수도회별로 현황 파악이 제대로 구분돼 있지 않아 이번 조사에서 제외했다.

▩ 한국인 사제 서품 현황

한국인 사제 서품자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1845년 8월17일 한국인 최초로 사제로 서품된 김대건 성인 이후 만 4년만인 1849년 4월15일 두 번째 성직자인 최양업 신부가 사제서품됐다.

이후 47년 만에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로 페낭신학교를 유학했던 예수성심신학교 출신 강도영, 강성삼, 정규하 신부가 1896년 4월 26일 사제로 서품됐다.

이들 세 신부는 국내에서 사제서품된 첫 번째 사례로서 금년이 1백주년 되는 해로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1845년8월17일)이후 현재까지 1백51년 동안 한국인 추기경 1명, 주교 30명, 사제 2천4백59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성직자들을 배출했다.

1996년 7월5일 현재 한국인 사제서품자 총수 2천4백90명중 김대건 신부부터 103위 한국 순교성인시성 이전해인 1983년까지 1백38년간 1천1백45명의 국내 신학교 출신 한국인 사제가 배출됐고, 1984년부터 1996년 7월까지 지난 12년간 1천3백45명의 새사제가 탄생했다.

이는 1984년 103위 한국 순교성인시성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사제성소 지망자와 함께 사제서품자가 증가된 사실을 실증해주는 수치로1백40여 년간 배출한 사제 양성자 수를 10여 년 만에 경신하는 세계 교회사에도 빛날 금자탑을 수립했다.

▩ 대신학교별 서품자 현황

한국인 출신 사제들의 대신학교별 계보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인 성직자 양성을 위한 노력은 1830년대부터 시작됐다. 박해시대의 신학교육은 해외 신학교에 맡겨졌다. 한국 천주교회사와 제일 먼저 인연을 맺은 신학교는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설립된「조선 신학교」이다. 여기서 1836년에 선발된 한국인 신학생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가 사제양성을 위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 페낭신학교-배론신학당

이후 국내 박해가 완화되자 철종시대부터 신학생 파견이 재개되는데 1854년 메스트로 신부가 이 발울리노, 임 빈첸시오, 김 요한 등 세 명을 선발, 말레이 반도에 있는「페낭신학교」로 보내나 사제양성에는 실패하고 만다.

국내에서는 1855년「성요셉 신학당」이 최초로 충북 제천 배론에 세워졌다. 성요셉 신학당은 푸르티에 신부가 교장으로 재임하며 조선인 신학생들을 양성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로 선교사들이 체포, 순교함으로써 개교11년 만에 자연 폐쇄되고 말았다.

조선 교회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 종교 자유가 점차 허용되자 블랑 주교가 다시 신학생들을 선발키로 하고, 1882~84년까지 3차례에 걸쳐 21명의 신학생을 페낭신학교로 유학 보냈다. 이들 중 12명이 훗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출신 사제로 서품된다.

▲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국내 신앙 자유의 폭이 넓어지나 국내 신학교 설립 움직임이 재개돼 1885년 10월28일 강원도 원주 부엉골 지금의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 581번지 일대에「예수성심신학교」를 개교했다. 오늘날 가톨릭 대학의 전신인 예수성심신학교는 페낭에서 귀국한 4명의 신학생을 합쳐 7명이 신학 교육을 받다 2년 후 1887년에 현 성심여고가 있는 서울 용산구 원효로 4가 1번지로 이전했다.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는 페낭신학교에서 귀국해 수학 중이던 강성삼, 강도영, 정규하 신부 등 3명을 개교 10여 년 만인 1896년 사제로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1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될 때까지 105명의 출신 사제들을 양성했다.

▲ 성 유스티노신학교

1914년 5월 27일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의 신학생들을 위해 성 유스티노가 현 대구 효성가톨릭대학 신학대학 교정에 설립됐다.

성 유스티노신학교는 중등과, 철학과, 신학과 등 12년제 신학교로 1918년 첫 졸업생 주재용 신부의 서품 이후 1944년 일제에 의해 경성 천주교신학교(용산신학교)와 통합될 때까지 65명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했다.

▲ 덕원신학교

1927년에는 함경남도 덕원에 신학교가 설립, 1949년 덕원 성 베네딕토수도원이 공산당 정권에 의해 몰수될 때까지 22명의 사제가 나왔다.

▲ 경성 천주교공교신학교

일제에 의해 폐쇄된 용산 신학교는 1945년 2월23일「경성 천주교공교신학교」로 개칭 재 개교했으며 1947년 4월 30일「문고 제31호」에 의해「성신대학」으로 승격될 때까지 11명의 신부를 배출했다.

▲성신대학

「성신대학」은 1959년 교명을「가톨릭대학」으로 변경할 때까지 12년간 98명의 사제를 탄생시켰다.

▲ 가톨릭대학

1959년부터「가톨릭대학」으로 교명이 바뀐 뒤 1996년 7월 현재까지 1천2백 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따라서 가톨릭대학은 전신인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 출신자부터 금년까지 개교1백11주년 동안 총 1천4백14명의 출신 사제를 배출했다.

▲ 교구 가톨릭대학

광주대교구가 1962년 설립한「대건신학대학」(현 광주 가톨릭대학)은 1969년 12월 조철현 신부를 비롯한 출신 첫 사제들을 배출하면서 올해로 총 6백19명의 사제를 양성했다.

1980년대 들면서 급격한 사제성소증가로 여러 교구에서 대신학교가 설립되면서 한국인 사제 양성에도 한 몫을 했다. 1982년에 설립된 대구 가톨릭대학은 1988년 첫 출신 사제를 배출하면서 지금까지 9년 동안 2백44명의 새사제를 양성했다.

수원 가톨릭대학도 1983년 설립 이후 1990년부터 출신 사제를 양성하면서 1백4명의 사제를 졸업시켰다.

1993년에 설립된 대전 가톨릭대학도 교구 출신 대학원생과 부제들을 받아들여 93년부터 모교 졸업생 사제들을 양성, 지난 4년 동안 20명의 사제를 배출했다.